나이 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령화, 불임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내다본 미래소설
‘인간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있다. 불로장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유한성, 일회성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러한 유한성, 일회성은 우리를 한없이 절망하고 좌절하게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삶에 더욱 집착하게 하고 열심히 살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를 ‘저주’로 받아들일지, ‘축복’으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다.
1장 진짜와 가짜
2장 오후의 아이
3장 세상의 복수
4장 낯선 사람
5장 생일 선물
6장 DNA 검사
7장 다른 도시로
8장 애완용 아이
9장 은밀한 거래
10장 새 부모와 새 집
11장 갓난아기
12장 유괴
13장 탈출
14장 아기자기 마을
15장 평생의 추적
16장 미스 버지니아
나이 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령화, 불임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내다본 미래소설
아이가 귀해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고령화, 불임 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고독과 불행을 그려낸 미래소설. “아동·청소년 모험소설의 왕”으로 불리는 알렉스 쉬어러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철학적 성찰을 담아냈다.
불로장생, 즉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만약 실제로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소설 속 세상에서는 마흔 살이 되면 국가에서 무료로 노화 방지 약을 나눠준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보통 160년을 거뜬히 살고, 심지어 200살까지 사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는 몸만 마흔 살이지, 그 안에 든 마음마저 노화가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사는 게 지겨워지고, 모든 게 그저 시큰둥하게만 느껴진다.
하루하루는 영원처럼 길고, 오후 시간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고, 밤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다 한 사람은 이제 무엇을 할까? 경험할 것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이제 무엇을 경험할까? 가볼 곳을 모두 가본 사람은? 읽어야 할 것을 모두 읽은 사람은? 들어야 할 음악을 모두 듣고, 알아야 할 이야기를 모두 안 사람은? (…중략…) 이제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본문 22-23쪽)
또 하나의 문제는 인간 수명이 늘어난 대가로 불임증이 생긴 것이다. 불임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퍼져서 자손을 번식하는 능력을 파괴했고, 이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는 일부 사람들만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높은 출산율과 낮은 사망률로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결과, 다이아몬드보다도 희소가치가 높은 아이를 훔쳐서 이득을 보려는 자들이 득실거리는데, 주인공 소년 태린 역시 그 희생양 중 하나다. 게다가, 태린은 ‘피피(Peter Pan)’ 이식 수술까지 강요받는다. 그 수술을 받으면 몸의 성장이 멈춰서 죽을 때까지 아이로서의 상품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린은 이미 피피 수술을 받은 아이(의 몸을 한 어른)들의 권태로운 모습을 보며 환멸을 느낀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어른들의 노리개로 살아가느니, 늙어 죽더라도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결국 탈출을 감행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자유로웠어, 아주 잠깐이라도 난 자유로웠어’ 하고 태린은 생각했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고, 아이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잠시나마 나는 나였다. 그냥 나. 진짜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그것이 혼자가 된다는 걸 뜻하더라도. (본문 237쪽)
‘인간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있다. 불로장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유한성, 일회성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러한 유한성, 일회성은 우리를 한없이 절망하고 좌절하게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삶에 더욱 집착하게 하고 열심히 살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를 ‘저주’로 받아들일지, ‘축복’으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