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란 작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할머니들
색깔과 인물들의 특징을 담아 바느질로 표현한 조혜란 작가의 그림책 『빨강이들』이 출간되었습니다. 『빨강이들』은 유치원생의 소풍을 담은 『노랑이들』의 연작으로, 빨강과 할머니들을 매치한 그림책입니다. 회색빛 할머니들이 빨갛게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노년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려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올겨울을 잘 넘겨야 해’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빨강의 온도
할머니들이 단풍놀이 가는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빨간 버스를 타고 단풍놀이를 가서, 알록달록 물든 나무와 산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흐름입니다. 이웃의 한 할머니의 일상 같은데, 그 안에서 삶의 단면과 할머니들의 마음의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삶에 지쳤을 할머니들은 회색빛 옷을 입고 표정도 무심합니다. 그 회색빛 할머니들이 어떻게 ‘빨강이들’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요? 할머니들의 변화는 엉뚱한 작가의 상상으로 드러납니다. 붉게 물든 산에 가서 실컷 단풍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 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할머니들은 나무들이 걱정되지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안쓰러워하며 등 두드려주는 할머니들의 마음입니다. 할머니들은 나무들에게 자기 옷을 벗어줍니다. 그런데 나무들도 내복 바람으로 길을 나선 할머니들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들은 할머니들 몰래 슬며시 나뭇잎을 보내주지요. 그 나뭇잎들이 겨우내 할머니 곁에 머물며, 할머니들의 옷가지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것입니다.
조혜란 작가가 작업한 천들은 진짜 할머니들의 일바지처럼 화려합니다. 색깔이며 무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눈에 띄는 게 목적처럼 보이지요. 묘하게 그런 할머니들에게 정이 가고, 장면들에서 따뜻한 기운을 받습니다. 어찌어찌 살아온 세월 속에서 은근한 향기를 피워낸 할머니들처럼, 조혜란 작가의 손끝에서 당차고 따뜻한 에너지가 전해집니다.
‘곱기도 하지 따사하고 폭신하다’
각박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할머니 이야기
『빨강이들』은 할머니들을 내 옆으로 불러냅니다. 할머니들은 인생살이가 시큰둥해질 법한데, 환한 웃음으로 화사한 옷으로 지혜롭게 늙음을 받아들입니다. 할머니들의 따스한 마음, 늙음까지도 유쾌하게 넘기는 마음은, 각박하고 분주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이 그림책이 자꾸 마음 한쪽에 맴도는 이유는 그림책 속 할머니와 꼭 닮은 우리 할머니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