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야 마땅한 대한민국의 개화기 역사저자 손상익은 기자 출신으로 문화일보의 창간 멤버였으며, 1991년 ‘시사만화 고바우에 대하여’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1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총의 울음’은 그가 5년간 자료조사와 집필과정을 거쳐 저술한 첫 소설이다. 역사소설 <총의 울음>은 140여 년 전, 조선을 침입한 프랑스와 미국 함대를 물리친 옹골찬 범 포수들의 투혼을 그린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빚은 비참한 패전으로 간주되었던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신미양요를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는 패한 ‘승리한 패전(Victorious Failure)’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 개화의 여명기, 역사의 그늘에 묻힌 백두산 범 포수들의 처절한 항전과 조선의 위대한 승리를 다시금 조명한다.조선의 최정예 부대, 백두산 범 포수!임진왜란 때 일본의 ‘조총(鳥銃)’이 조선에 전해진 이후 화승총은 함경도와 평안도 범 포수들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범 포수들의 용맹함은 중국과 러시아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 17세기 중엽 효종 임금의 북벌 계획에서 주력 부대로 편성된 것이 화승총 부대와 범 포수 자원이었으며, 이들은 두 차례의 나선정벌(羅禪征伐: 1651-1654)로 흑룡강 유역에서 러시아 부대를 두 차례나 궤멸 상태로 몰고 갔다. 그때부터 조선의 군부는 백두산 범 포수들을 ‘최정예 조선군’으로 여겼다.
피보다 붉고 죽음보다 처절한 백두산 범 포수들의 항쟁19세기 동아시아에 몰아닥친 서세동점의 기류를 타고 프랑스와 미국은 첨단 무기인 라이플과 거대 함포로 무장해 조선을 침공했다. 이미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청나라를 점령하고,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을 침략해 강제화친을 맺은 이후였다. 그러나 조선을 침략한 프랑스와 미국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아무리 함포와 라이플을 쏘아대도 죽을지언정 항복하지 않는 이상한 부대를 만난 것이다. 바로 그들이 강화도에 배치된 백두산 범 포수 부대였다. 항복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며 발사한 범 포수 부대의 화승총 총성은 그야말로 피와 눈물이었다. 서양 군대의 라이플에 비하면 딱총보다 못했던 화승총이었지만, 범 포수의 기개는 침략군을 질리게 만들었다. 물러나지 않는 조선군을 계속해서 상대할 여력도, 흥선대원군의 강경한 쇄국 의지를 꺾을 방법도 없었다. 결국 프랑스와 미국은 강화도를 점령하고도, 목표했던 통상조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한 달여 만에 슬그머니 철수하고 말았다.한국인의 맵고 독한 ‘투혼’의 뿌리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의 승리였다. 19세기 서세동점의 역사에서 서구의 대규모 원정군을 두 차례나 잇달아 물리친 경우는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도 조선이 유일했다. 신미양요 이후 철수한 미군은 적군인 백두산 범 포수를 ‘타이거헌터(Tiger Hunter)’라고 기록하고 그들의 용맹함과 항전의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항복하여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싸우다가 꼿꼿하게 죽기를 원했던 백두산 범 포수들의 꺾이지 않는 투혼. 한국전쟁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국민들의 ‘깡과 패기’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은 모두가 바로 백두산 범 포수의 투혼을 이어받은 타이거헌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저자의 말 >지난 5년을 ‘총의 울음’에 매달렸다. 장르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의 달달한 글맛을 배제하고, 우선은 읽기가 깔깔하고 텁텁할지언정, 책을 덮고나면 가슴팍 아래서 무언가가 치오르는 그런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다.화승총을 화두로 삼았다. 우리나라 개화기의 신새벽에 당대 세계 최강이던 프랑스와 미국 정예군을 막아낸 조선군 범 포수의 옹골진 이야기를 쓰고팠다.처음 써보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까다롭기 그지없었으므로 첫술에 배불릴 형편이 안 된다면 - 요행이 이 책을 집어든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걸랑, 그의 가슴 속에 우리 민족이 왜 ‘투혼의 한국인’인가를 깨닫는 실톳으로 이 소설이 쓰였으면 좋겠다.< 책 속으로 >1.“어떻게 죽어야 하나.”까칠한 화두를 놓고 밤잠을 설쳤다. 생각이 깊어질 때마다 자신의 갑옷을 뚫은 미군 총알로 말미암아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지는 환영이 겹쳐졌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서 칙칙하게 달라붙는 그것들을 떼어 냈다. 자신은 죽어야 했고, 그러나 조선은 이겨야 했다.육신을 죽여 혼신(魂神)이 승리하는 길. 자신의 죽음을 흔쾌히 전제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만 자신의 사멸 이후를 정리하는 일이 돌부리처럼 걸렸다. 머릿속을 꽉 채우는 아내와 피붙이의 아릿아릿한 잔상이다.전투에 나서는 장수가 빠지지 말아야할 웅덩이가 있었다. 이승의 연분과 이별하는 일이 두려워 스스로 파놓은 연민 구덩이다. 패장의 치욕을 그들에게 물릴 수 없는 노릇이다. 어재연은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그 연민의 싹을 자르기로 했다. 그가 살아 있음에 거미줄같이 얽어놓은 이승의 인연을 걷어내야 했다. - [하권, 8장. 강화로 가는 길 중에서]2. 미국과 조선이 저마다의 체통을 걸고 한 판 전쟁을 벌이려 했다. 겉보기에는 꽤나 거창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속 내막을 한 겹만 들쳐보면 한없이 나약해서 죽음이 두려운 하얗고 누런 인간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동병상련의 고뇌에 절어 있었다.해오라기란 놈이 강화도 논두렁에 사는 모양이었다. 아아악, 밤하늘을 자지러지게 들깨웠다. 해오라기 울음에 답하듯 가까이메숲진 곳에서 쫑쫑쫑, 날카로운 새소리가 들렸다. 먼 산사의 범종소리가 가늘게 잇대었다. 찰주소의 밤이 인경(人定: 밤 10시)을 넘어서고 있었다. - [하권, 9장. 먹장구름 중에서]3.벼락이 꽂히듯 나타난 조선군이 검지로 화승총의 방아쇠를 감은 채 사나운 눈매로 틸턴의 이마에 총구를 정조준했다. 꿈쩍도 않는 서서쏴 자세였다. 틸턴은 그의 앞에 갑자기 솟구쳐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범 포수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조선군은 불과 7~8미터 앞에서 화승총을 들이대곤 마치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가늠자와 가늠쇠를 잇는 연장선에 틸턴의 이마가 얹혔고, 그가 조금만 움찔거려도 화승총 총구가 적확(的確)하게 따라붙었다. 조선군의 눈에서 분노가 출출 쏟아졌다. 틸턴이 그 눈총을 받아치면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참으로 기이한 경험이었다. 피스톨을 쥔 틸턴의 오른손이 벌벌 떨리며 손가락의 힘이 풀렸다. - [하권, 11장. 조우(遭遇) 중에서]
8장 강화로 가는 길
기각지세(掎角之勢)
어머니
대임(大任)
왼 버선, 붉은 동곳
명예와 영광
착한 사무라이
출항 전야
해병 대위 틸턴
9장 먹장구름
조용한 황해
6월 첫날의 억수
대궐의 초여름
이기조와 장대(竹竿) 편지
불깐 황소
찰주소(札駐所)
수자기(帥字旗)
달빛 장승
달무리 횃불
10장 전야(前夜)
쇠뇌와 대조총
별동대와 예비대
날라리와 자바라(啫哱囉)
꽂히는 별
거자필반(去者必返)
아우 재순
주말전쟁
흔들리는 맥키
11장 조우(遭遇)
개흙 악다구니
암중모색
시뻘건 하루
뇌고눌함
헬 마치(Hell March)
친구
조우
12장 산화(散花)
총의 울음
골등육비(骨騰肉飛)
접은 날개
13장 강화의 빈 하늘
승리한 패전(Victorious Failure)
살아남은 자의 멍에
토악질
썰물
[부록 2]
근대사 재평가 - 한국인의 ‘투혼’
신미년 조미(朝美) 전쟁
1871년 신미양요, 역사의 그늘에 묻힌 백두산 범 포수들의 항전과 조선의 위대한 승리를 파헤치는 역사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