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

귀신이라는 것은 과연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귀신이라는 것이 없다는 확신을 할 수도 없다. 다만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삶을, 현대학문이라는 것에 의존해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 스스로는 귀신에 관해 관심이 없지만 주변에서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가끔 들을때가 있다. 여름만 되면 꼭 등장하는 남량특집이나, 여름철에 영화관에 걸리는 시시껍절한 귀신영화들. "또 저런 것이야..." 하며 웃고 지나칠때가 대부분이지만, 해마다 그런 것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직도 귀신에 대한 수요가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귀신에 대한 수요... 오늘날의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성이 없는 물건, 즉 팔리지 않는 물건, 살 사람이 없고 소비할 사람이 없는 물건은 생산되지 않는다. 특별히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돈이라는 형태로 구매되어서 재생산될 여력이 없어지면 더 이상 재 탄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사회에는 아직은 귀신에 관한 수요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라는 책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생활을 통해서 수없이 접하는 귀신이지만, 귀신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정리가 없이, 저마다 자신들 나름의 귀신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살아왔던 우리나라에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크게 두가지 부분으로 나뉠수 있을 것 같다. 즉 귀신론과 귀신담이다.



귀신론은 철학적인 의미에서 귀신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동양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유교라는 학문체계에서는 귀신이라는것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정리된 내용을 만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귀신이라는 것은 유교의 이론체계에서는 합당하지 않는 엉터리 민간전승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제사를 지내는 등 귀신을 인정하는 유교에 대해 막연히 비논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은 공자로부터 주자를 거치면서 유교에서 귀신이라는 존재에 관해 어떤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상당히 정밀한 이론체계를 보여준다. 귀신이라는 존재는 유교의 이론체계에서 튼튼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존재인 것이다.



이에 반해 귀신담은 복잡한 이론체계와는 상관없이 일반인들이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생각들을 담은 이야기의 모음들이다.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양반도 평민도 노비도 있었다. 또 남자와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귀신이라는 존재를 조금씩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모든 가치체계는 결국은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그 많은 귀신이야기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귀신에 관한 동화와 전설들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즉 귀신의 존재와 귀신의 모습들은 그 귀신을 탄생시키고 받아들인 사람들의 정신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결국 귀신은 우리나라의 과거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산물이며, 오늘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져오는 우리문화의 뒷모습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점을치는 사람들이 있고 굿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용하다는 목사님들이 귀신을 쫒아내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그런 사실들은 여전히 우리사회에 귀신이라는 수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귀신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귀신의 존재에 의해서 그 아픔이 경감되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그런 사회가 오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그래서 귀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모두가 평안한 삶을 누릴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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