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권력의 경영
이제 다섯 살된 딸아이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왜?”란 한 단어이다. 그 또래에겐 참 당연한 일이겠지만, 밑도끝도 없이 “왜?”라고 물어보는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왜 이래?”, “왜 안돼?”,”왜 가는거야?”.. 끊임없는 그 녀석의 탐구욕에 아빠된 도리로써 고마워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귀찮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해주는 것을 보면 내가 나쁜 아빠는 아닌가 보다.
인간에게 있는 본연의 탐구욕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사실들을 발견해왔고, 새로운 문물을 발명해 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인간의 모든 문물/제도들은 그런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현대인들은 그런 선조들의 탁월한 ‘유산’덕에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주변의 모든 것들의 근원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가져본 이는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 어린시절 끊임없던 탐구욕은 ‘귀찮음’에 자릴 뺏기고, ‘뭐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란 생각에 묻혀버리고 만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더욱 그러하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무언가 음침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소위 ‘정치인’들이 벌이는 여러 행태들을 보자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왠지 나랑은 별반 상관없는 그런 것인 듯 생각된다. 그래서 큰 고민없이 ‘흘려’넘겨버리는 단어이다. 하지만, 권력이란 늘 우리곁에 있으며, ‘조직’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존재이다. 이미 우리는 그 권력관계의 한 ‘테두리’에 들어가 있으며, 내가 무언가 사회적 행위를 하려고 한 순간 ‘권력기재’는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총체적’ 권력에 대한 근본적 물음. 여기에서 ‘권력의 경영’은 시작된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딱딱한 문체,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들. 시작부터 ‘형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지막지한 이 책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것일까. 겉에서 풍기는 아우라마저 범상치 않은, 그리고 제목도 그다지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이 책 “권력의 경영”. 이 책은 한마디로 ‘권력’에 대한 교과서라고 해 볼 수 있다. 왜 교과서하면 ‘개요’,’설명’등을 통해 우릴 이해시키는 책 아닌가? 그렇다.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 ‘권력’에 대한 속성과 근원, 그리고 그 상실과 시사점에 대해 ‘아주’ 논리적으로 풀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총 4개의 파트로 나뉘어진 이 책에선 크게 ‘권력의 의미’,’권력의 근본 원천’,’권력 행사의 전술’,’권력의 상실을 통해 본 권력경영의 의의’를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권력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과연 권력을 누가 행사하고, 또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조직생활 자체가 바로 권력행사의 장임을 알 수 있다. 2장에서는 권력을 만들어내는 여러 요인들을 분석한다. 이 책의 백미가 바로 이 부분인데, 막연히 ‘권력’에 대한 음침한 느낌에서 좀더 구체적인 ‘권력’의 정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소위 ‘잘 나가던’ 인물들이 왜 잘 나갈 수 있었고, 권력의 정점에 다다를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권력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깨닫고,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권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직 생활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소중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3장에서는 권력행사를 위한 전술을 보여준다. 특히 실제 발생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어떤 경우에 적절한 권력행사가 가능해지며, 권력행사를 더욱 강화시켜주는지를 보여준다. 여러 정치행위들 이면에 숨은 의미를 찾고,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제 4장에서는 권력을 잃어버린 사례를 통해 권력 상실의 원인과 그 대처법이 설명되며, 권력경영에 대한 간결한 정의가 잇따른다.
사실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느낀 것은 ‘막연하다’란 것이었다. 마치 학부시절 비전공 분야의 수업에 들어가 그 분야의 전공 용어들이 남발되는 첫 수업처럼. 긴장되고, 혼란스러운 그 느낌 그대로.. 하지만, 책의 페이지가 더해갈수록 그 내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내가 접한 수많은 상황들이 오버랩되며, 어떻게 이 사례들을 내가 적용해 볼 수 있을까란 고민을 일으켜주었다. 결국 이론적 권력론을 통해 실천을 일깨워주는 ‘바이블’ 같다고 해야할까. < 사실 이정도의 권력론이 자주 있을까 싶기도 하다 >
무겁다. 책도 무겁지만 그 내용 역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렵다고 모두 피해버린다면 ‘지구는 누가 지키겠는가?’.. 우리가 권력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면, 결국 그 전쟁터에서 이겨야 하는 법. 이 책은 그 전쟁터를 이겨내는 소중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