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과 조직의 정치를 알아야 하는 이유
1989년 10월 17일 오후 5시 4분, 진도 7.1의 강진이 캘리포니아 주 북부를 덮쳤다. 재난 직후 시작된 교각 복구 작업은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진행돼 6주 후에 다리가 다시 개통되었다. 그러나 18개월이 지나서도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리지의 개통이 '유일한' 완전복구 사례였다. 손상된 간선도로와 나들목 및 고속도로 시설들이 방치된 결과로 캘리포니아 주는 물류비로만 매년 2천3백만 달러 이상의 경제적 비용 증가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재난 복구에 필요한 예산과 자원을 동원하지 못하는 당국의 무능 때문이었다.
1981년 3월, 샌프란시스코의 어윈 메모리얼 혈액은행에서 어느 '알에이치Rh형 베이비'가 47세 기증자의 혈액을 수혈 받았다.
1981년 9월, 3월에 수혈을 받았던 아이는 면역기능 장애를 겪었다. 이때 혈액 기증자 또한 아파서 의사를 찾았고, 자신은 정기적으로 혈액을 기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2년 11월, 샌프란시스코 보건부 전염병통제국의 부국장 셀마 드리츠 박사는 수혈을 통해 에이즈가 전염된 최초의 사례를 문서로 작성했다. 혈액은행 업계는 일관된 부정으로 대응했다. 미국혈액은행협회 임원인 조셉 보브 박사는 공중파 방송에 나와 에이즈가 수혈을 통해 감염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983년 1월 4일 돈 프랜시스는 보건 관련 회의에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합니까?그로부터 1984년말까지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미국인들은 대략 1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수천 명이 죽었다.
에이즈 예방 조치가 조기에 이루어 지지 않았던 까닭은, 에이즈가 '게이 질병'이기 때문이었다기보다는(그것도 분명 전체 그림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의학 분야의 전통적 기득권층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진실은 승리한다는 순진한 생각에 빠진 채 정치적으로 무능했기 때문이었다.
합리적이며 적시에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이윤이 보장되는 기업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개인용 컴퓨터와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 마우스를 최초로 발명한 기업은? 애플 컴퓨터가 1983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했지만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는 이미 1970년대 중반에 이 모든 것들을 개발했다. 그렇지만 연구소는 다른 부서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하고 마케팅 부서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해서 남에게 그 성과를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혁신은 불가피하게 기득권을 위협하기 마련이므로 본질적으로 정치 활동이라는 것이 저자가 지적하는 이들 사례의 교훈이다. 저자는 아이디어와 의사결정을 결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무능력은 오늘날 조직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치적인 의지와 전문성을 기르는 것, 즉 반대에 부닥치는 한이 있어도 뭔가를 이루려는 욕망과, 그것을 가능하게 할 지식과 기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오늘날이야말로 여느 때보다 권력을 연구하고 그것을 노련하게 사용하는 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 권력은 필요악인가?
권력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책《권력의 경영》에 나오는 근거 하나. 제프리 간즈와 빅터 머레이가 사내 정치에 관한 관리자들의 태도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90% 이상이 ‘조직에 사내 정치가 존재한다’고 답했으며, 89%는 ‘성공한 경영자는 훌륭한 정치가’라는 데 동의했다. 그런가하면 ‘조직에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주변 분위기가 훨씬 정치적이 된다’(76.2%), ‘조직에서 출세 또는 성공하려면 정치적으로 굴어야 한다’(69.8%)고 답한 비율도 꽤 높았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직 관리자들은 권력과 정치가 실재함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응답자들은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았다. 동일 응답자들의 55%가 ‘정치 활동이 효율성을 해친다’고 답했으며, ‘정치 활동이 없는 조직이 정치 활동이 왕성한 조직에 비해 건전하다’고 답한 비율도 59.1%나 된다. 권력과 정치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개인의 성공에 필수적임을 알면서도 이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권력의 경영》의 저자 제프리 페퍼 교수(스탠포드 경영대학원)는 권력의 역기능을 우려하기보다 권력을 획득하고 효율적으로 행사, 관리하는 것이 조직의 발전에 유용하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 ‘경영학계의 휴머니스트’ 제프리 페퍼의 새로운 이면
제프리 페퍼는 인적자원과 조직행동 분야의 석학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국내에도《휴먼 이퀘이션》(The Human Equation),《숨겨진 힘, 사람》(Hidden Value),《사람이 경쟁력이다》(Competitive Advantage through People) 등의 저서를 통해 사람이야말로 경쟁우위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기업 경영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제프리 페퍼의 이러한 메시지는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 또는 감원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신자유주의 환경에서도 의미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를 ‘경영학계의 휴머니스트’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 그가 조직 내의 권력과 정치 문제에 주목한 것은, 일면 의외의 행보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프리 페퍼는 “권력과 영향력 행사의 원리야말로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것이며 사회적 관계망을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권력과 정치를 통해 다른 사람의 협조를 얻어 조직의 목표를 성취하고 갈등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과, 조직 안에 몸담고 있는 개인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것.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이기에, 권력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논지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 같은 내용을 전개한《권력의 경영》은 경영학, 사회심리학 등의 지식을 배경으로 기업 조직 내에서의 권력의 실체와 작동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기업 조직에서 권력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략과 전술도 제시한다.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애플컴퓨터, 제록스,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다양한 기업일화들도 소개하고 있으며, 로버트 맥나마라, 린든 존슨 등 미국 현대사를 움직인 정치인들의 권력 행사에 관한 사례들도 방대하게 담고 있다.
■ 권력의 원천과 권력 행사 전술
권력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최고경영자나 고위 경영진 등의 리더들이다. 제프리 페퍼는 권력과 영향력을 키우고 행사하려는 의지와 기량이 리더들에게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권력이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사태의 전개 과정을 바꾸며, 저항을 극복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실행하게 만드는 잠재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카리스마를 가지고 태어나 저절로 행사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일까? 제프리 페퍼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즉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 권력은 조직 내의 분업, 의사소통 체계 안에서 차지한 위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조직 내의 이해관계와 책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외에도 자원을 통제하고, 동맹을 형성하고, 의사소통 네트워크 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등의 수단으로 권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제프리 페퍼 교수는 권력 행사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 전술로, 프레임 짜기ㆍ대인 영향력 확보ㆍ타이밍ㆍ정보 활용과 분석ㆍ구조 변경ㆍ정치적인 언어 구사 등을 들기도 한다.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기술을 접하면서도 내내 남는 질문이 있다. 한 번 권력을 획득한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이를 유지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권력을 획득하고 나서도 이를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제프리 페퍼는 권력의 역학관계는 필연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권력 상실에 대처하는 최선책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임기를 정하고 승계 과정을 조직화하는 등 권력 상실의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또한 권력 상실을 회피하지 않고 기품 있게 자리를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권력과 정치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것이기도 하지만, 유용하기도 하다. 이러한 권력관계와 정치의 변화가 조직의 효율성과 실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프리 페퍼가 내린 결론이다.
■ 모든 리더에게 필요한 ‘경영과 권력’ 교본
모든 조직에 각양각색의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정치적 지형과 유력한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권력을 키우고 행사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이 책은, 기업의 리더를 비롯해 조직과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현대 비즈니스맨들이 경영과 권력의 관계를 통찰하는 데 훌륭한 지침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
Part 1 조직과 권력
1장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힘
2장 언제 권력을 사용하는가
3장 권력과 의존도 진단
Part 2 권력의 원천
4장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5장 자원, 동맹, 새로운 황금률
6장 의사소통 네트워크에서의 위치
7장 공식적 권위, 평판, 업무수행능력
8장 적절한 조직에 소속되는 것의 중요성
9장 권력의 또 다른 원천, 개인적 자질
Part 3 권력 행사의 전략 전술
10장 프레임 짜기
11장 대인 영향력의 확보
12장 타이밍이 모든 것이다
13장 정보와 분석의 정치학
14장 권력을 공고히 하는 구조 변화
15장 상징적 행위 : 언어, 행사, 배경
Part 4 권력의 역학
16장 권력은 어떻게 상실되나
17장 권력 역학관계의 생산적 운용
18장 권력 경영
주석
색인
지은이 | 제프리 페퍼 Jeffrey Pfeffer
스탠포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조직행동학 석좌 교수. 카네기멜론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 대학과 UC 버클리에서 경영학 교수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 및 관리자 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세계 전역에서 경영자 세미나를 주최해 왔다. 미국 내의 여러 기업, 협회 및 대학들의 관리자 개발 교육 과정에서도 활발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전문 조직들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여러 학술 저널의 편집위원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조직 내의 권력》(Power in Organizations)《조직과 조직이론》(Organizations and Organization Theory)《조직 설계》(Organizational Design)《휴먼 이퀘이션》《숨겨진 힘, 사람》《사람이 경쟁력이다》등이 있다.
옮긴이 ︳배 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일반기업의 홍보 업무를 비롯해 IT 프로젝트 개발 설계 컨설팅 업무까지 두루 경험한 뒤 전문 번역을 시작했다.
《스마트 리스크》(공역) 《에고노믹스》를 옮겼으며, 최근에는《브랜딩 불변의 법칙》을 번역하고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블로그(http://brecht.egloos.com)를 운영하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번역을 지향하는 의욕적인 번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