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한다. 여기, 나무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의 힘으로 작은 책을 엮어 낸 이가 있다. 사진가 송기엽. 초봄에 새순을 틔우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부터 한겨울 추위를 견뎌 내는 나무의 앙상한 어깨까지, 그의 렌즈 속으로 들어와 마음 한 켠을 차지한 ‘나무’를 이 책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나무 다르게 보기
때로는 꽃 한 송이가 추억을 건드리기도 하고 열일 곱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때도 있다. 항상 보던 지인의 얼굴이 다르게 보이고 일상의 풍경이 성큼 가슴속으로 들어와 찡해 지는 순간처럼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 보면, 나무의 얼굴도 달라 보인다. 꽃이 하도 유명해서 잎을 보지 못한 나무며, 나무가 성장하는 짧은 순간 놓쳐 버린 한 때 등 쉽게 볼 수 없는 모습과,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의 즐거움이 《애장본 나무》에는 가득하다. 햇빛이 스며드는 고요한 숲 속에서 나무를 마주하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원색의 사진을 넘겨 보자. 마음도 그 싱그러운 색감을 따라 결곱게 가라앉는 경험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워
200여 컷의 사진 속에 담긴 나무의 얼굴은 제각기 다르다. 계절별로 모습이 다르고 옹이에 상처를 입은 나무도 벌레 먹은 잎들도 있다. 그저 평화롭게 느껴지지만 그 이면의 아픈 얼굴도 작가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큰 틀 안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듯 고요한 고목에서 봄이면 거짓말처럼 새순이 돋는 모습에 마냥 가슴이 뛰고, 연이어 물이 오른 연초록의 작은 잎들은 꽃보다 곱다.’
한 철 격정적으로 꽃이 피고 질 때도 늘 같은 자리에 든든히 서 있는 나무. 그 나무의 아름다움을 읽을 줄 아는 작가의 깊은 시선이 따뜻하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무는 열 두 달을 돌아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그 장한 생명의 기운이 공기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정화시켜 준다.
‘모든 나무들은 겨울이면 앙상히 죽어 있는 듯 보이지만 잎만 떨어졌을 뿐 분명히 살아 숨쉬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성장을 멈출 뿐이다. 살바람이 불며 따스한 봄 기운이 시작되면 나무는 한 세안을 지낸 인고의 시간을 뒤로 하고 또다시 봄을 맞게 될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찬란한 축복의 계절, 숲 속은 새 생명을 약속받은 자연으로 들썩인다.’
《애장본 나무》를 읽다가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잎을 발견하면 한번 유심히 바라보자. 그 잎새와 가느다란 실핏줄 같은 잎맥 속에서도 나무의 숨소리, 대자연의 깊은 호흡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이 한 권의 책이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