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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1940(완역)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1940(완역)

17,000 원
  • 저자 : 모던일본사
  • 옮긴이 :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홍선영,박미경,최영님,윤소영)
  • 출판사 : 어문학사
  • 출간일 : 1970년 01월 01일
  • ISBN : 9788991956476
  • 제본정보 : 반양장본

도서 분야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에 이어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이하 『조선 1940』으로 약칭)을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의 완역으로 독자들에게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이 잡지는 일본 굴지의 출판사 문예춘추사에 의해 1930년 10월 창간되었으며 창간 당시부터 편집에 관여해온 마해송이 1932년 2월호부터 편집책임을 맡았다. 다시 1932년 8월 모던일본사로 독립한 이후, 1939년 11월과 1940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조선특집호’를 발행하게 되는데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종합잡지로서 일본문예사에서도 매우 이색적인 존재이다.

책의 표지를 장식하는 여성은 영화배우 ‘문예봉’이다. 그녀는 1932년 이규환의「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춘향전」,「아리랑고개」, 나운규의 「나그네」, 안종화의 「인생항로」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해방 후에는 북한 최고의 인민배우로서 작고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영화배우이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문예봉의 전신 모습을 담고 있어 표지 사진만으로도 이 책의 흥미진진한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1940』의 두드러진 기획기사는「현지보고」이다. 사회적 관심의 초점이 되는 지역과 분야를 선택하여 모던일본사의 기자가 직접 취재한 르포 형식의 글로서「경성 번화가 탐방기」,「웅진광산 견학기」,「소록도 탐방기」,「지원병 훈련소 방문기」,「경성 학생 생활 르포르타주」등이 편성되었다. 이 중「경성번화가 탐방기」는 당시 경성의 번화가인‘북촌’의 종로와‘남촌’의 본정(本町)에서 만나게 되는 오래된 건물과 유명한 맛집과 술집, 카페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게와 그에 얽인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1940년 당시 서울의 거리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 밖에도 조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 다양한 소재의 글들이 실려 있다.「도쿄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인들」,「조선에는‘해외파’박사가 많다」,「운동계에서 기염을 토하는 조선인들」에서는 현재 언론계, 문예계, 무용계, 음악계, 연극, 영화, 미술계, 스포츠, 학계, 미술계, 실업계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활약상이 상세히 기술되었다. 여성과 관련한 기사도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도쿄를 방문한 기생들’,‘기생의 하루’를 소개하는 화보와, 오늘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연상시키는‘미스 조선’의 화보와 당선 심사 등은 이 무렵의 미인의 기준을 가늠할 수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대중잡지’답게 다양한 편집 형식을 구사하여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엽서회답, 만화뿐만 아니라, ‘색깔 있는 페이지’라는 기획 하에「조선복 활용법」,「조선의 속담」을 비롯해, 위트와 재치가 있는 조선의 이야기를 담은「조선의 거짓말 클럽」,「조선 박식 대학」, 「은혜를 모르는 호랑이」,「다리 부러진 제비」,「나비의 유래」,「조선의 명재판관」등 옛날부터 전해오는 민담이나 동화가 소개되고 있어 흥미롭다.「엽서회답」란에서는‘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오해받기 쉬운 점’에 대한 조선의 지식인들의 답변을 담아 조선인에 대한 편향된 인식과 일본인의 부정적인 조선 인식의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일본에서 발행하는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파격적인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이해할 때, 제국주의의 억압성과 이에 맞서는 ‘저항’의 코드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내용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조선 산업계의 장래」등의 기사에서는 당시 급격하게 공ㆍ광업 중심으로 발달한 배경에는 식민지조선이 일본의 대륙진출과 무관한 곳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대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오히려 이 점을 이용하여 새로운 개척지인 북중국과 만주에 대해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했던 조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광수, 송금선, 김기진, 최정희 등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의‘시국영합’적인 글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광수의「나의 교우록」, 송금선, 김기진, 최정희의「내선문답」에서 피력한 글은 그들이‘내선일체’고양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비껴갈 수 없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조선 1940』은 ‘전시체제’하에 ‘친일파’의 활동내용이나 일반인의 ‘전쟁협력’, ‘일본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이 섞인 일상생활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한편‘제국 일본’이 필사적으로 최후의 항해를 하던 이 시절의 긴장감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조선 1940』을 통해서 일제강점기라는 제한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제국’의 언어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애써 남기고자 했던 마해송을 비롯한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노력에 대한 평가와 이 시대의 자화상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1. 역자의 말...3
2. 목차...11
3. 일러두기...12
4. 완역<모던일본>조선판 1940년...13
5. 역주...500
역자: 한비문(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한국과 일본의 역사, 사상, 문화. 예술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지식생산의 일거리를 즐기는 젊은 연구자들의 공동체다(http://hanbimun.com) 홍선영 한일근대문학 전공 쓰쿠바대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 박미경 일본고전문학 전공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졸업 인문과학박사 대전대학교 연구교수 채영님 한일근대문학 전공 히로시마대학 대학원졸업 교육학박사 청주대학교 강사 윤소영 근대 한일관계사 전공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졸업 인문과학박사 한국독립기념관 연구소 연구원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년(조선특집판)』에 이어서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년(조선특집판)』을 독자들에게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이 특집호의 출간 경위에 대해서 모던일본사 사장 마해송은 적자를 각오하고 출판했던 제1차『모던일본』조선특집판(1939년 11월호)이 예상외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급기야 당초 계획에 없던 제2차『모던일본』조선특집판(1940년 8월호)을 발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1939년판은 자신이 기획하였지만 1940년판은 모던일본사의 기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는 점도 피력하고 있다.
그러면 『조선 1940』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 모던일본사 기자의 현지 취재가 돋보이는 『조선 1940』
먼저 전체 기획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은 「현지 보고」이다. 사회적 관심의 초점이 되는 지역과 분야를 선택하여 모던일본사 기자가 직접 취재하고 기록하는 르포 형식의 글로서 「경성 번화가 탐방기」,「웅진광산 견학기」,「소록도 탐방기」,「지원병 훈련소 방문기」,「경성 학생생활 르포르타주」 등이 편성되었다.
이 가운데「경성 번화가 탐방기」는 당시 경성의 번화가인‘북촌’의 종로와 ‘남촌’의 본정(本町)을 기자가 직접 걸어 다니면서 옛 건축물과 유명한 맛집이나 술집, 카페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게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당시의 거리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또한 「경성 학생생활 르포르타주」는 경성 내의 대표적인 네 개의 대학을 들어‘신사적인 경성제국 대학생’,‘청춘을 구가하는 연희전문’,‘호걸형 보성전문’, 그리고‘낙원의 처녀들 이화여전’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각각 캠퍼스의 특징과 대학생들의 분위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대학들의 현재의 모습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에도‘지원병 제도’와‘창씨개명’의 실태가「지원병 훈련소 방문기」와「조선독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잡지가 발행되던 해인 1940년에는 건국 2600주년 기념을 위해 기원절이 선포되고 아울러 창씨개명이 시행되었는데 단 3개월 만에‘170만 명’이 참여했음을 현지 취재 기사는 전하고 있다. 또한 웅진광산과 지원병 훈련소는 당시의 시국에서 매우 중요한 부문으로 기사 내용은 전쟁협력적인 논지로 일관되어 있다.
이와 함께 대담, 수필, 논설, 좌담회, 단상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배치하는 한편 같은 형식과 동일한 주제에 대해 일본 측과 조선 측의 필자를 균형 있게 배치하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조선 1939』보다 조선 지식인의 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졌다. 문학 지면의 경우 『조선 1939』와 달리 일본소설이 전혀 실리지 않은 대신에, 박태원의 「길은 어둡고」, 김동리의 「동구앞 길」, 최명익의 「심문(心紋)」등의 소설과, 박종화, 김상용, 김동환, 김억, 임학수의 시가 일본어로 번역되어 식민지 조선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광수, 송금선, 김기진, 최정희 등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시국영합’적인 글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광수의 「나의 교우록」과 송금선, 김기진, 최정희의 「내선문답」에서 피력한 글은 그들이 ‘내선일체’ 고양에 적극적이었다는 의혹에서 비껴갈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내선일체’의 절정기 1940년과 ‘로컬’로서의 조선
우리가 그동안 일제 강점기를 이해할 때, 제국주의의 억압성과 이에 맞서는‘저항’의 코드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조선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는 좌담회」에는 1910년대 일제교육에 대한 반항의 산물로 알고 있는 전통교육기관인 ‘서당’의 증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鹽原時三郞)를 인터뷰한「조선의 황국신민화 운동」이라는 기사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급격하게 발전한 조선의 중공업화와 함께 지원병제도와 창씨개명에 대하여 조선 내에는 저항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호응도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또한 조선은행 총재 마쓰바라 준이치의 글인「조선 산업계의 장래」에는 조선 산업이 급격하게 공ㆍ광업 중심으로 발달한 배경에 조선이 ‘대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이 점을 이용하여 새로운 개척지인 북중국과 만주진출을 도모하며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했던 모습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편 이 책에 담긴 일본 측과 조선 측 지식인의 수필은 1940년 조선의 모습과 지식인이 갖고 있던 조선 인식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본 측 필자로는 후쿠다 기요토, 야나기 무네요시, 세키구치 지로, 시모무라 가이난 등이 있으며 조선 측 필자로는 장혁주, 이극로, 안함광, 정인섭이 있다. 일본논객의 글은 대체로 조선 여행기나 조선의 전통미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쓰고 있는데 1910년대와 1920년대 일본인의 여행기와는 달리 조선의 자연풍광의 수려함, 전통건축의 아름다움, 차분한 조선 사람들의 표정 등을 담담하게 그리면서‘진보와 전통이 공존해 있는’조선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후쿠다 기요토의「조선, 본 대로의 기록」에는 기차에서 만난 조선인 젊은 부부가 조선어와 ‘내지어’를 섞어 쓰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전하여 ‘조선’적인 모습과 ‘일본’적인 모습이‘불편하지 않게’공존하고 있는 1940년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조선 측 논객으로 장혁주의 「불국사에서」를 보면 그가 당시 경주를 조선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의 제자로서 경주를 방문하는 명사들을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는 점, 그리고 경주에 사는 일본인 부부가 조선인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극진히 기르던 이야기, 자신의 가족은 그렇게 관광지로 거듭나는 경주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상생활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의 글에서는‘내지인’과 조선인이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공존하며 살아온 듯이 그려져 있어 양자의 불협화음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이극로의 「문화의 자유성」에서는‘일국 안에도 여러 문화가 병존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며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수 있을 때에 대국’이라고 하여‘대일본제국’의 범주 안에서 조선의 전통문화 연구와 보존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정인섭의 「조선의 로컬 칼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점을 보여 당시 식민지 조선을‘제국’의‘로컬’로서 인식하고 있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1940』에서 특히 귀중하게 생각되는 글은 ‘조선 고전 특집’이다. 먼저 「조선 고화폐의 연혁」을 실은 유자후는「편집 후기」에 조선 문화의 권위자로 소개된 인물로 그의 글은『동아일보』에 1938년 2월에서 8월까지 총 133회 연재한 「조선 화폐 연혁」에 의거하고 있다. 한편, 고유섭의「조선 고대의 미술 공예」는 당시 개성박물관장을 역임한 고유섭의 조선의 전통미에 대한 식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글로서 주목된다.


-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조선 지식인의 면면과 대중문화의 융성
『조선 1940』에서 특히 힘을 기울인 기사는 조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 다양한 소재의 글들이다. 전국 21개 도시의 역사적·지리적 특징, 교통, 산업, 인구, 개발 현황 등 약진하는 조선의 오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쿄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인들」, 「조선에는 ‘해외파’ 박사가 많다」, 「운동계에서 기염을 토하는 조선인들」에서는 현재 언론계, 문학·예술계, 스포츠계, 학계, 실업계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활약상이 나열되어 있는데 창씨개명을 한 경우에는 그 이름까지 소개해 주고 있어 주목된다. 일제의 억압구조 하에서도 외국유학이 가능했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시의 실상에 대한 보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밖에 조선의 영화에 대한 소개가 주목할 만하다.「약진하는 조선 영화진」에서는「승리의 뜰」, 「신개지」,「복지만리」,「수선화」,「대지의 아이」,「돌쇠」총 6편의 영화에 대해 제작자, 각본, 연출, 배역, 줄거리 등을 소개하고 있고 좌담회「반도 영화계를 짊어진 사람들」에서는 조선영화의 역사와 연혁을 비롯해 영화 제작자와 영화 제작시의 상황이나 배우들에 관한 뒷이야기와 함께 향후 조선영화가 나아갈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영화계의 거물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영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서항석의 글「반도 신극계를 전망한다」에서는 조선 신극의 현황과 그 쇠락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어 당시 신극계를 가늠해 보는 데에도 좋은 자료이다.
다음으로 여성과 관련한 기사가 비중 있게 구성되었는데 화보에 ‘도쿄를 방문한 기생들’,‘기생의 하루’를 소개하여 대중적인 흥미를 유도하고자 한 점이나, 오늘날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연상시키는 미스 조선 당선자 발표는 이 무렵의 미인의 기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조선 여학생 좌담회」는『조선 1940』출간을 위해 새롭게 기획되어 현지 취재 온 기자와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인텔리 여성으로 꼽히는 여학생들이 모여 그녀들의 음악, 문학, 무용, 스포츠, 영화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비롯해 그녀들의 연애관과 결혼관, 좋아하는 간식과 용돈 내역 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좌담회이다. 그 중에서도 좌담회에 참여한 여학생들이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기생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어 주목된다. 기생들이 일반 가정부인들의 사치를 조장하고, 무턱대고 잘난 체하려 하고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결코 직업으로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생은 직업여성이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하나의 수단이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냉철한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생이 번성하는 것은 사회의 죄이자 남성의 죄라는 것에는 모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또 평등권을 주장하는 여자와 우위권을 주장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결혼과 연애를 둘러싼 모든 남녀 문제가 발생하므로 “사회 질서의 건설은 남자를 처음부터 다시 단련하는 일”이 선행과제라고 지적한다. 당시 상황에서 여성들의 고민이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은 점이 신선하다.


-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가벼운 읽을거리로 만나는 1940년의 조선
『조선 1940』의 또 하나의 특징은 ‘대중잡지’ 다운 다양한 편집 형식을 구사하여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기사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엽서회답, 만화,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조선 1939』의 형식을 계승한 것으로서 ‘색깔 있는 페이지’라는 기획 하에「조선복 활용법」,「조선의 속담」을 비롯해, 위트와 재치가 있는 조선의 이야기를 담은「조선의 거짓말 클럽」, 일본어와 한국어의 관련성을 생각하는「조선 박식 대학」,「은혜를 모르는 호랑이」,「다리 부러진 제비」,「나비의 유래」,「조선의 명재판관」등 지혜나 해학이 돋보이는 민담들이 소개되고 있다. 조선의 동화, 복식문화, 여행지, 만평 등의 흥미로운 소재를 알기 쉽게 풀어냈으며, 그밖에 조선 관련 미니 상식을 연상케 하는 짧은 글과 참신한 지면 배치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또한 ‘엽서회답’,‘내선문답’,‘조선 백문백답’과 같은 문답 형식의 기사들에는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전달방식을 통해 피상적인 조선인식을 탈피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엽서회답」란에서는 ‘조선인이 내지인에게 오해받기 쉬운 점’에 대한 14명의 조선 지식인들의 답변을 담아, 조선인에 대한 편향된 인식 즉, 이기적, 배은망덕, 나태, 도벽 등으로 왜곡된 일본인의 인식부족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전설」이라는 코너를 두어『조선 1939』의「춘향전」과「심청전」에 이어『조선1940』에서는「홍길동전」과 「숙영낭자전」이 소개되었다. 이 두 소설은 1910년대 중반 이후 한글본이 출간되어 식민지 조선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이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등 조선연구가를 통해 조선의 고전작품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으나 대중잡지에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소록도 탐방기」는 당시 일본인 원장에 의해 강제노동, 일본식 생활강요, 불임 시술이 이루어졌다고 밝힌 한센병 관련 자료의 기록과는 달리,‘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이상향’으로 소록도의 모습을 전하고 있어 『조선 1940』의 현실인식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끝으로 이 잡지에서 흥미를 더하는 점은 1940년 10월 17일에 가을호 조선판을 발행한다는 광고가 실려 있고, 조선판의 연 2회 정기간행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을호가 발행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모던일본』에서 기획한 조선 특집호는 센터에서 번역한 두 권뿐인 것 같다. 또한 태평양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던 1943년에『모던일본』은『신태양』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했는데 1943년 11월호가「징병제 시행 기념 전투하는 조선 특집호」라는 부제 하에 발행되었다고 하나 이 역시 실물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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