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의 마르크스가 당시 유럽의 수도라 불리던 파리에서 이제 막 태동하여 자리를 잡고 뻗어 나가기 시작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각종 경제학 서적들과 철학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일궈 낸 성과이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당대 수많은 경제학자의 저서를 연구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동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 경제체계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을 어떤 식으로 분할하고 배치하는지, 이 분할과 배치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인간적 삶을 어떻게 동물적 삶으로 변질시키는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은 무엇인지 등을 논하고 있다.
『경제학-철학 초고』는 발본적으로 무엇인가 심각하게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책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불평등한 처지를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빈곤의 원인으로 귀착시키는 여러 안이한 학자들의 주장을, 불평등한 현실의 원인에 천착하지 않은 채 현존 사회를 주어진 그대로 인준하는 불철저한 이론들을, 또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는 있으나 오직 미온적이고 피상적인 대안에만 만족하는 사회 개혁가들의 저서들을 탐독하고 해부한다. 끝으로 『경제학-철학 초고』는 이 소외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노동 여건의 개선, 임금인상과 같은 분배의 평등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다운 연대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공산주의를 제시한다.
책소개
마르크스는 인간이란 자신이 처한 경제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고 거기에 ‘종속’되는 존재이지만, 그 환경에 반작용하여 이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힘 또한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다른 물질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반응만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물질세계를 적극적으로 의식하고, 이에 반작용하여 자신 또한 변화시켜 나가는 독특한 물질로 본 것이다.
내가 속한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의 조건들을 점검해 볼 의향이 있다면 『경제학-철학 초고』를 읽어 보아야 한다. 인간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규정한 마르크스에게 각 개인이 가진 역량은 다른 개인들과 함께할 수 있을 때 최대화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강조한 인간의 유적 역량이란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 또 다른 사회적 존재로서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함을 통해 발휘되는 실천적인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