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작가, 참여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사르트르와 카뮈는 흔히 ‘실존주의’라는 항목 아래 항상 같이 묶여 거론되곤 한다. 8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밀했던 두 사람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두 사람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만다. 지난 세기에 그들이 왜 친구이자 적이 되었는지 묻는 작업은 오늘날에도 이데올로기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을 성장시켜 온 대가들을 비교?대조하여 그들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프레너미(Friend Enemy) 시리즈. 지금까지도 프랑스 대중에게 사랑받는 두 사상가가 남긴 논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불안과 전쟁을 지나며 성장한 두 사상가,
냉전의 시대를 지나며 서로 다른 길을 가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친구-적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변광배 교수의 친절하고 깊이 있는 분석이 펼쳐진다!
‘구토’와 ‘부조리’, 불안과 고뇌의 시대를 건너다
사르트르와 카뮈 두 사람이 성장하던 20세기 초엽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산업혁명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뉘어 계급 갈등이 벌어졌고, 제국주의의 팽배, 그 끝에 벌어진 1차 세계대전…. 격변하는 시대를 겪으며 19세기 말부터 서구 사회는 대전환을 맞이한다. 그동안 굳건히 믿어 온 전통적인 세계관, 가치관, 인간관이 무너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잃어 불안했고, 새로운 가치관을 찾기 위한 고뇌를 이어 갔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불안과 고뇌로 가득 찬 시대를 지나며 ‘구토’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인간의 인식 속에서 규정되어 있던 사물이 어느 순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에게 이질감을 준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간-사물의 관계가 해체되어 인간에게 ‘구토’를 일으키는 현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 인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을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카뮈 역시 ‘부조리’로 불안과 고뇌의 시대를 설명했다. 부조리는 단절을 전제한다. 나와 나, 나와 사물, 나와 타자 사이의 단절을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부조리라고 카뮈는 말한다. 그는 이런 부조리한 감정 속에서 문득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단절을 극복하는 힘이 생긴다고 본다.
사르트르와 카뮈 두 사상가는, 아주 비슷한 시대적 감수성을 지닌 채로 ‘구토’와 ‘부조리’로 불안과 고뇌의 시대를 건넌다.
‘폭력으로 이어진 우리’와 ‘반항으로 연대하는 우리’, 강철과 불의 시대를 건너다
1차 세계대전 후 여전히 불안과 고뇌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2차 세계대전이라는 포화 속으로 내몰려야 했다. 사르트르와 카뮈 역시 최고의 지적 생명체라고 자부했던 인간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쟁을 겪으며 ‘나와 타인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던졌다.
사르트르는 여기에 대단히 차가운 진단을 내렸다. 그는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 단결을 도모하면서도 결국에는 그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도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그렇게 형성된 집단마저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계급 투쟁으로 귀결되고 만다고 본 것이다. 또한, 양쪽으로 나뉜 집단이 폭력을 통해 이상적인 집단을 성립하고 나서도, 이 집단을 존속시키기 위해 또다시 ‘폭력’으로 점철된 서약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면에 카뮈는 타자를 ‘나’의 낙원이자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 개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투쟁하기보다 그들을 동정과 연민의 주체, 공존의 주체로 바라보기를 바랐다. 카뮈는 ‘나’ 개인의 존재보다 ‘우리’의 존재가 먼저라고 말한다. 따라서 부조리에 반항하는 ‘나’는 반항하는 ‘우리’로 연대하며, 협력적이고 자발적인 집단으로서 부조리에 반항한다고 본다.
두 사람은 상반된 ‘나-타자’ 인식을 가지고 강철과 불의 시대를 건넌다. ‘우리’란 과연 폭력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공동체일까, 연대감으로도 뭉칠 수 있는 공동체일까?
‘진보적 폭력’과 ‘목적-수단’, 얼어붙은 시대를 건너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냉전시대를 거치며 사상의 노선을 달리한다. 사르트르는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었고,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투쟁을 통한 혁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카뮈 역시 계급 갈등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두 사람의 방법론이 달랐다.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가 제안한 ‘진보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혁명에는 ‘폭력’이 수반되고, 혁명의 완수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폭력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카뮈는 여기에 반대했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그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슬로건 아래서는 필수적인 폭력도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이미 인적, 물적 피해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상황에서 한계가 정해진 폭력은 세상을 바꾸는 데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한다면, 결국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목적의 순수함과 숭고함마저 퇴색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뮈는 1951년 『반항하는 인간』을 출간하며 이러한 자기 생각을 굳혔고, 결국 사르트르와 결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진보적 폭력과 목적-수단의 문제를 던진 얼어붙은 시대를 건너며 결국 서로 다른 경로를 택하고 만 것이다.
이 책은 사르트르와 카뮈의 글, 작품을 자세히 분석하여 작품 속에 드러난 두 사람의 사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두 사상의 유사한 점과 상반된 점을 짚어 낸다. 1, 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라는 격변기를 지나며, 인간의 고독과 불안, 본능을 날카롭게 분석한 사르트르와 카뮈. 친구-적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두 사람의 탁월한 통찰력을 만나는 이 책은,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지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