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빵 같은 푸코’, 이것은 1966년 여름, 푸코의 책, 『말과 사물』이 한창 잘 팔릴 때 프랑스 유명 시사주간지 『누벨옵스(Nouvel Obs)』에 난 기사 제목이다. 『말과 사물』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이 책이 철학 사상과 학문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극히 제한된 독자를 겨냥한 매우 까다로운 책이었음에도 거둔 성공이었다.
사람들은 푸코의 책을 해변에서도 읽었고, 아니, 최소한 휴가를 떠날 때 가지고 갔으며, 이 ‘사건’을 자신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저 무심하게 놓았다는 듯 카페의 테이블 한옆에 그 책을 슬쩍 놓아두곤 했다. 이 그림에 자신의 붓을 가하기를 원치 않는 신문이나 잡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 철학의 왕 푸코와 그의 모닝빵
“푸코의 작품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L\'œuvre de Michel Foucault est une des plus importantes de ce temps).”
-장 라크루아, 「휴머니즘의 종말?」, 『르 몽드』, 1966.6.9.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은 출간과 동시에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책의 인기는 일종의 유행이었고, 푸코는 이 책과 더불어 프랑스 철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혹은 혹자에 따르면 프랑스 철학의 왕좌에 올랐다- 모닝빵 같은 푸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푸코의 『말과 사물』은 거침없이 팔려 나갔다. 위에서 인용한 장 라크루아의 평가나,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로베르 캉테르의 평가, “우리는 『말과 사물』이 새로운 사상에 대한 위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질 들뢰즈의 평가가 『말과 사물』이 당시에 가졌던 위치를 잘 표현해 준다. 물론 이 책이 모든 이로부터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르트르로부터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푸코는 “사르트르는 내 책을 읽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며 차갑게 응소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의 성공이 푸코의 성공을 가져왔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리고 이 책이 푸코의 책 중 중요한 책에 손꼽힐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그처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단 말인가?
인간과학의 고고학, 『말과 사물』
『말과 사물』은 분명히, 쉽사리 읽어내기에는 어려운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이토록 어려운 책이 프랑스에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었던 건 프랑스인과 우리의 철학적 격차가 그처럼 크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 이유는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원어와 번역어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인한 전달의 어려움 때문일까? 물론 어느 정도 어려움은 있을 테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앞서 언급한 푸코와 그의 책에 대한 높은 평가와 그전부터 불고 있었던 구조주의의 유행 덕으로 해석하는 게 적합해 보인다. 푸코는 후일 구조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했지만, 이 시기 푸코는 구조주의에 가까운 견해를 펼쳤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각 시대를 지배했던 인식 틀, 에피스테메의 모습을 밝히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고고학’이었다. 『말과 사물』에 인간과학의 고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푸코는 왜 고고학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푸코가 “지식의 ‘공간’ 내부에서 경험적 인식의 다양한 형태를 야기시켰던 배치”에 대하여 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푸코의 ‘고고학’은 유럽 근대사상사를 삼분하고, 근대적 인간을 탐구하며 ‘인간의 종언’을 선언한다. 그렇다면 푸코의 고고학은 왜 이렇게 진행되었을까? 이 책,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읽기』는 푸코와 그의 모닝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