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돌아보며
회생·파산제도의 존재 이유를 말하다!
회생·파산제도는 채권자의 재산권 행사를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일까?
아니면, 불운한 채무자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며
사회의 약한 고리를 이어주는 공공선일까?
경제적 곤궁과 과도한 채무로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이들의 수는 한 달에 대략 2000~3000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국 법원에 접수되는 신청 건수는 1만여 건에 이른다. 이 통계수치는 경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개인회생을 통해 채권자들에게 일부 채무를 변제한 뒤 새출발을 하고, 어떤 이는 개인파산 신청 후 면책을 받아 경제적 어려움에서 극적으로 벗어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다른 길에 다다른 한계채무자들,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개인은 자기 능력과 자기 결정권에 기반해 삶을 선택하기에 그 책임 역시 스스로 온전히 감당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운한 상황 혹은 개인이 대처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서까지 모두 책임을 묻는다면 더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미국을 필두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그 실패에 대해 일정 부분 역할을 감당하고자 특별한 제도를 두고 있다. 바로 회생·파산제도다. 곧 이 제도는 ‘채무자 면책과 회생을 통한 공동체의 공존공생’을 위해 존재한다. 많은 이가 이 제도를 통해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계채무자가 경제적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회생·파산제도의 진정한 존재 의의인 것이다. 사회경제적 상황 변화에 예민한 채무자들에게는 사회의 관용에 따른 ‘디폴트 세팅’이 필요한데, 한계채무자가 자본주의적 삶의 기본값을 다시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선순환 작용이 회생·파산제도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 책은 회생법원에서 파산과장으로 근무하는 지은이가 업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발품 팔아 기록한 것이다.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는 어떻게 가려내나요?”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와 관련한 회생·파산제도의 변명” “선생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악성 민원인이십니다” 같은 글에서는 업무 담당자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고뇌, 채무자들의 고통과 희망, 채권자들의 불만과 억울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고, “제로섬 게임 앞에 선 최저생계비” “더 따뜻한 회생·파산제도가 되기를” “법은 인간의 얼굴을 닮지 않았다” 같은 글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참된 정치가 이뤄지고 선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녹여냈다.
조금은 불편한 주제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에 지은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도 경제적 파탄에 처하는 이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라면서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나 제도가 모든 이를 구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회안전망 확보라는 차원에서 약자들을 위한 제도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회생·파산제도가 바로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현행법이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얼굴과 따뜻한 가슴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며, 회생·파산제도가 하나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다고 해서 인생까지 파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경제활동 복귀라는 새로운 봄날을 위해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공동체의 공공선 아닐까.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이어주는 공공선(公共善)과 개인선(個人善)의 조화를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