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당시에는 손가락질을 당할지언정 영구불변으로 ᄭᅳᆺᄭᅡ지 남게 되리라는 신임(信任)만 가지고 나의 연구를 힘잇게 세워나갈 작뎡입니다.”
1928년 학범 박승빈이 했던 말이다. 학문에 대한 그의 신념과 열정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학범 박승빈 선생은 1880년 근대 개항기에 태어나서 신학문을 접하고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정신을 배웠으며, 개화와 자력갱생을 통해 자주독립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이었다. 귀국 후 검사로 법조계에 몸을 담았으나 국운이 기울어지는 시기 홀연히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어 동포들을 위해 변론대에 섰다.
학범은 계몽가로서 민족문화 재건과 애국계몽 사업에 앞장섰으며, 민족의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활약을 했으며, 스포츠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학범 박승빈의 우리말글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학범은 근대인으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한 지식인 중 한명이었다. 우리말의 특성을 살려 독창적인 우리말 문법 체계를 세웠으며, 훈민정음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반인들이 알기 쉬운 철자법을 만들었고 이를 널리 보급하려고 노력했다. 조선어학연구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정음』을 발간하여 우리말글의 연구와 발전에 앞장섰으며, 국어 문법 이론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저서 『조선어학』(1935)를 저술하기도 했다. 학범의 국어연구는 오늘날까지도 후학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학범의 국어연구 전반을 다루지 않고 그 가운데 몇 가지 특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한국어학』89호 (2020)에 실린 <학범 박승빈> 기획 특집 논문을 다듬어서 다시 엮었다. ‘학범 박승빈 국어학상’이 한국어학회에 제정되었고 2020년 8월 20일에 첫 번째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학회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학범 박승빈을 집중 조명하는 기획 특집을 마련했고, 이 책에 실린 4편의 논문이 그때 발표된 것이다.
먼저 ‘박승빈의 생애와 국어연구’는 국어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승빈의 연구 활동을 중심으로 박승빈의 생애 전반을 정리하였다. ‘박승빈 문법의 계보와 국어학사적 위상’은 국어학사에서 박승빈 문법의 위치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조망한 논문이다. ‘박승빈의 언어 개혁 운동’은 일제강점기 계명구락부를 통해 박승빈이 벌였던 언어 생활 개혁 운동의 실상과 의미를 파헤쳐본 것이다. ‘박승빈의 『언문일치 일본국육법전서』(1908)에 대하여’는 박승빈이 검사 시절에 일본 법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을 소개하고 이 책에 담긴 표기법과 번역 어휘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조선어학연구회의 기관지 『정음』의 성격과 의미를 고찰한 논문이 추가되어 책의 주요 내용을 꾸리게 되었다.
<붙임>에는 독자들이 박승빈의 국어연구 활동을 좀더 쉽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붙였다. 먼저 박승빈의 논저목록과 연보를 실어 박승빈의 생애와 국어연구 활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박승빈 문법을 핵심적으로 요약하여 도식으로 정리한 <조선어체계알람> 표를 덧붙였다. 이것은 1925년경에 작성되어 인쇄 , 배포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현배의 『우리말본』(1928) 등을 비롯하여 조선어학계에 영향을 준 의미 있는 자료이다. 더불어 『언문일치 일본국육법전서』(1908)의 내용도 일부 소개한다. 이 번역서는 박승빈 문법의 얼개를 보여준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번역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헌법과 상법의 일부분을 일본어 원문 자료와 함께 실었다.
그동안 박승빈의 문법과 어문연구 활동은 국어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밝히는 작업은 소홀하고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이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