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성하. 우주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해 쓰고 지구에 운동을 부여한 이 책에 대해 듣자마자 어떤 사람들은 이 믿음과 함께 제가 즉각 반박되어야 한다고 외칠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무시할 정도로 제 자신이 저의 견해에 현혹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자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의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신이 내린 인간의 이성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모든 것에 대해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잘못된 견해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서문 중에서
우주의 중심을 옮긴 혁명서, 탄생하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각각 자신의 명작인 <모나리자>, <다비드 상>, <아테네 학당>을 발표하고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던 르네상스 말기. 루터가 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지 고작 17년이 되던 해인 AD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우주(태양계)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는 책을 출간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천동설을 주장한 지는 약 1,400년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는 약 50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로 지식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 100여 년이 지난 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년 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고, 한참 전국시대인 일본은 49년 후에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전 세계가 세계화와 계몽화라는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던 격동의 시기,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할 만한 책 둥 하나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나 오래 된 책을 어째서 보는 것일까?
약 5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이야기한 “Revolution”(회전)으로 “혁명”을 표현한다. 칸트가 처음 사용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학교에서는 갈릴레이와 케플러 등으로 이어지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배운다. 하지만 실제로 코페르니쿠스가 구체적으로 뭐라고, 어떻게 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과학자, 심지어 천문학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사에 있어 가장 혁명적이라 할 만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그저 제목으로만 남아 있다.
오래된 옛날 책,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책, 너무 어려운 책, 굳이 알 필요 없는 수식으로 가득 찬 책, 그저 상징적인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이를 부정하기란 어렵다. 거의 맞는 말이다. 오죽하면 헝가리 태생의 영국 작가이자 비평가 아서 케슬러[Arthur Koestler]는 이 책에 “역사상 가장 안 팔린 책”,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을까?
실제로 이 책의 1, 2권은 이해하기 어렵고 3, 4, 5, 6권은 읽기도 힘든 수식과 도해, 표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얼마나, 어떻게 어렵고 읽기 어려운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계산기도 없던 시절에 이뤄진 그 엄청난 계산과 추론의 표면을 엿보는, 그래서 과학이 얼마나 투쟁적으로 발전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펼쳐 볼 이유가 있다. 실제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초판본을 찾는 여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하버드의 오언 깅거리치[Owen Gingerich] 교수는 여러 나라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조사하여, 갈릴레이, 케플러 등 특급 천문학자들이 읽고 논쟁을 벌인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책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 책의 오류에 관하여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며 과학을 더욱 발전시킨 후대의 학자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이해는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배우는 목적은 과학적 사실과 법칙을 알기 위한 것만 있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과학적 방법론을 익히기 위함이다. 과학적 사실은 시대가 흐르며 변하거나 소멸하지만, 방법론은 지속적이고 더 세련되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을 과거의 과학적 사실을 익히기 위해서보다는, 약 14세기 동안 유지된 과학적 믿음이 깨지는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면 독자는 “혁명”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