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이야기를 풀어낸 순우리말 동시집
옛날에 사용했던 말들과 지금 사용하는 말들을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말은 아예 사라져 버렸고, 어떤 말은 새로 생겼으며, 또 어떤 말은 뜻이나 형태가 변했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는 생기고, 사라지면서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언어는 우리의 유산이므로 사라진 순우리말을 찾아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울산의 향토 작가 김이삭은 순우리말을 찾아내어 33편의 시집으로 묶었다. 이바구란 ‘이야기’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순우리말 동시집 <우시산국 이바구>엔 울산의 바닷가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순우리말 중에는 간혹 낯익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다. 하지만 말의 뜻도 함께 알려주기 때문에 시를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특별히 이 시집에는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바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바닷가를 떠올리면 바람이 먼저 생각나는데 여러 종류의 바람이 순우리말 시 속에서 살아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설화의 주인공이나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과감하게 시의 소재로 쓰고 있어 시를 감상하는데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옛날 옛날 울산에/ 처용 부부 살았다네// 예쁜 아내 얻은 처용/ 덩실덩실 춤추었다네// 착한 처용 시험한 역신/ 황소바람 같이 아내 방 들어갔다네// 그래도그래도 처용/ 웃으며 덩실덩실 춤추었다네// 그래도그래도 처용/ 웃으며 덩실덩실 춤추었다네 -<춤추는 처용> 전문
처용이 외출했을 때 질병을 전파하는 신인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범하였다. 처용은 이를 발견했으나 분노하지 않고 향가인 〈처용가〉를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의 인품에 감격한 역신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사라졌다.
고려시대 이후, 새해 초나 질병이 돌 때 문 앞에 처용의 얼굴을 그려 붙여놓았다. 처용의 얼굴을 보면 역신이 도망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용은 요즘도 무속 신앙에서는 질병을 쫓는 신으로 숭배된다.
처용에 관한 전설이 가락을 입어 동시로 재창조되었다. 역신이 처용의 아내 방에 들어오는 모습이 순우리말인 ‘황소바람’으로 비유되었다. 황소바람은 좁은 틈이나 구멍으로 들어오는 아주 세찬 바람이니 몰래 들어오지만 무서운 역신의 모습을 빗대는데 아주 적절하다.
옛날 입암마을에 예쁜 처녀 살았대/ 공양미 동냥 돌던 스님/ 처녀에게 반해 버렸지/ 빨래터 건너 숲 속에 숨어/ 넋을 잃고 보았대/
동냥바랑에 쌀 넣던 처녀 손을/ 그만 잡고 말았대/
놀란 처녀 집 안으로 숨었지/ 큰 폭우 내려 홍수 진 날/ 빨래하던 처녀/
“어머! 정말 이상도 해라. 바위도 장가가는가 봐.”/ 놀리자 바위가 재넘이바람같이 처녀를 덮어왔대/
지켜보던 스님/ 처녀 구하려다 / 둘 다/ 선바위에 깔렸대/
그 후/ 흐린 날이 되면 백룡이 나타난대/
한번 가 볼래?/
-<선바위> 전문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태화강 상류에 기암괴석이 있는데 우뚝 서 있는 모양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선바위’라고 부른다. 종종 백룡이 나타난다 하여 이곳은 백룡담이라고 불린다. 작가는 이곳에 얽힌 이야기로 시를 썼다. 바위가 처녀를 덮치는 모습을 순우리말 ‘재넘이바람’에 빗댔다. ‘재넘이바람’은 산꼭대기에서 평지로 부는 바람을 말한다. 그런데 스님이 처녀를 구하려다 함께 죽었다는 내용이 애달프다. 그 후 나타나는 백룡은 스님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읽다 보면 절로 웃음도 나고 슬프기도 한 시이다. 순우리말 동화시이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순우리말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시로 읽히고 노래로도 불리면 사라진 순우리말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순우리말은 고스란히 우리 것이어서 더욱 정감이 간다. 어린이들이 이 시집을 자꾸 읽어 순우리말을 배우고 또 순우리말 동시를 지어 보면 좋겠다. 작가는 이 책으로 울산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