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공포의 게임> 읽은 후...
이용재님의 <탐욕과 공포의 게임>을 읽었다. 미국발 금융 위기를 계기로 널리 알려진 다양한 파생상품들을 둘러싼 탐욕과 게임적인 실상을 알아보고 싶어 책을 고른 나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장 지글러라는 분이 자기장을 측정하여 별들의 궤도를 계산하고 학문적 활동을 객관화하는 천문학자처럼 자연법칙을 들먹이며 인간이 아닌 이윤만을 생각하는 오늘날의 금융 전략가들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을 기억한다. “금융 전략가들은 자연법칙을 들먹인다. 그들의 눈에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려의 정확한 의미는 신고전학파 경제학 진영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수학을 남용한다는 의미(본문 57 페이지)와 맥을 같이 한다. 신고전학파 경제학 진영은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는 가정 하에 논의를 펼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물리학을 흠모했지만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고전 물리학으로는 풀 수 없는 숱한 난제들 앞에 선 사람들이다.(본문 59 페이지) 이 난제 앞에서 시장은 인간이라는 합리적인 존재들에 의해 꾸려지는 곳이며 그렇기에 정부의 개입은 죄악이라는 생각은 더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는 호모이코노미쿠스에 반론을 제기하는 행동주의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생각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말해주는 학문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은 감성이나 충동 앞에 이성은 무력한 것이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은 곧잘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 난감한 이야기를 저자는 금융전문가들의 편향, 일반인들의 편향, 그리고 편향을 극복한 사람들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풀어간다. 금융 전문가들이 수학자 및 물리학자, 그리고 기상예보가들 및 의사들에 비해 편향적임을 나타내주는 다양한 사례를 보며 당연하지만 인간은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마뱀의 뇌(본문 71 페이지)를 가진 인간인 것이다.
<탐욕과 공포의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가진 느낌은 다양한 파생상품들을 둘러싼 탐욕과 게임적인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책은 불합리하고, 군중심리에 휩싸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곤 하는 경제 주체들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특히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애널리스트들 뿐 아니라 돈을 맡기는 사람들의 책임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묻어가기 작전’은 치밀함과 남다른 안목의 소산이다. "예측이 틀려도 욕먹지 않을 방법이 있는데 굳이 자신의 명성에 흠집을 내면서까지 독창적인 예측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 (본문 109 페이지)란 저자의 지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일기변동에는 기상 관찰자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주가 변동에는 주식 투기자의 판단과 행동이 작용한다는 지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탐욕과 공포의 게임>은 불합리하며, 군중심리에 휩싸이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곤 하는 경제 주체들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기에 일반적인 의미의 투자 안내서가 아니다. 하지만 투자의 배경 및 근본 동기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탐욕과 공포의 게임>은 분명 의미있는 지침서이다. 특히 수많은 어리석은 결정과 판단 사례들 적시로 설득력이 배가되었음은 물론이다. 책을 읽으며 느낀 생각은 사람이란 합리적인 존재라는 편견부터 벗어야 함은 물론 인간 심리와 뇌과학 등에 두루 정통해야 할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가장 큰 미덕은 거론된 편향 사례들이 충분히 재미 있다는 점이다. 외환 딜러들의 세계나 국제 환투기 세력들의 비밀을 책을 통해 알았을 때 느꼈던 희열이 문득 문득 느껴졌다. 사실 나는 현대 금융 자본의 투기 자본적 성격과, 수(數)에 치우치는 비인간적 특성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필요 이상으로 진지한 편인데 <탐욕과 공포의 게임>은 적절한 긴장과 지적 흥미, 우려, 공감, 착잡함(먹이사슬의 진실 편에서 드러난 바) 등을 두루 느끼게 한 책이다. 저자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저자 스스로 문제제기만을 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해법을 냈다는 데에 있다. 특히 집단의 의견 취합(聚合) 과정에서 계급이 낮은 성원이 대세와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을 ‘악마의 변론(devil's advocate)’ 제도로 극복하자는 대목(본문 115 페이지)이 그렇다. 탄탄한 논리와 근거를 지닌 생산적인 반론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실정에서 ‘악마의 변론(devil's advocate)’ 같은 제도는 의미있는 대안이 아닐 수 없다. 한편 HTS 활성화가 초래하는 역설적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투자자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HTS 활성화, 그리고 과량(過量)의 정보가 투자자를 더 잦은 ‘withdrawl - deposit‘로 몰고 결국엔 투기적 거래에 빠지게 한다는 분석은 귀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본문 130 페이지) <탐욕과 공포의 게임>이 다룬 비합리적인 사례 즉 바보들의 게임규칙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렇다면<탐욕과 공포의 게임>이 처한 위상은 어떤가? <탐욕과 공포의 게임>은 여러 모로 <퀀트>와 <매드 머니>, <전염성 탐욕> 등의 책을 새롭게 찾아 읽거나 다시 읽게 하는 책이다. 작년 물리학과 출신의 금융분석가를 뜻하는 퀀트(quant)라는 말이 우리에게 새롭게 알려졌는데 <탐욕과 공포의 게임>에서 다루어진 많은 전문 용어들이나 편향 사례들 역시 중요하게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money machine(본문 202 페이지), value tracer(본문 221 페이지), fat tail hunter(본문 239 페이지) 같은 말들 말이다.
그러나 저자를 신뢰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연금 관련 업계가) 엄청난 목표 금액을 제시해서 사람들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 (본문 197 페이지)와 같은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충고로부터 기인한다. 이 말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많은 노후 자금을 목표로 하는 것은 연금 관련 업계 이전에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각과 전환이 우리를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이끌 것이다. 좋은 책을 쓴 저자와 북스토리에 깊이 감사드린다.
http://www.kyobobook.co.kr/booklog/myBooklog.laf?memid=courante24&booklogId=337361
http://blog.aladdin.co.kr/745224125/2355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