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은 조선의 시를 쓰라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유명한 방랑 시인 김삿갓이나, 영화 <취화선>에서 광기 어린 모습으로 표현된 장승업의 삶이 조선의 시인 묵객이나 예술가로 떠오른다. 금방 먹물이 뚝 뚝 떨어질 듯한 묵향의 신선한 영상이 맺히는 것은, 예술 혼이 담긴 그들의 작품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술과 벗하고 자연에 취하면서 거친 세파의 풍랑 속에서 신념과 열정으로 그 흔적을 남긴 겨레의 대표적 문인이나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기획으로 한국사 권위자인 이이화님의 <인물로 본 한국사 시리즈 > 3번째 책이다. 예술가적 그 끼와 열정을 불태운 인물의 생애를 만난다.


잘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새롭게 발굴한 듯한 인물도 포함되어서 조선의 혼을 빛낸 인물을 알게 했다. 260여 명의 인물 중에서 힘들여 고른 기색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자료 부족으로 빠진 인물의 조명이 빠진 점에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멀리 중국까지 명성을 날린 명 문장가 변계량을 비롯한 근대 영화의 개척자 춘사 나운규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역사 인물 탐구이다. 그중 장혼, 조수삼, 홍명희, 이원영, 정윤성 등 인물의 발자취가 주목이 되는 책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예술혼을 불태운 인물의 삶을 일화 중심으로 펼쳐냈다.


잘 알려진 인물이라도 오늘의 관점에서 재평가한 점이 새롭게 인물을 보는 안목을 넓혀준다. 특히 황진이를 비롯한 허난설헌,계생의 일화에서 여성 인물을 돋보이게 한다. 남존여비의 시대 규율 상 천대받던 굴레 속의 설움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이 규방문학을 높이 산 안목이 다른 책과 차별이 된다.


"어떤 인물은 광기로 예술혼은 불살랐고, 어떤 인물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각 인물의 됨됨이를 살려내는 생생함이 역사 속 인물의 생애를 통하여 인물의 다양한 성격이나 행동을 새롭게 살펴본다. 또한, 현대 인물의 삶에 반추해 보게 된다.


치열한 삶을 살아낸 예술가의 삶을 되돌아 보는 면에서, 주체할 수 없었던 감성과, 예술적 끼와 재능에 감탄한다. 자료를 모으고 편찬하여 다채로운 색깔로 역사의 빛을 발하는 예술 문화의 주역으로 자리 잡게 담아낸 저자의 공로에도 찬사를 보낸다.


"허균은 문사나 벼슬아치의 생애가 아닌 반역자란 이름으로 종장을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가 그를 이름난 시인으로 평가하든, 홍길동전을 쓴 작가로 평가하든, 불 같은 개혁 의지로 왕조를 한바탕 엎으려 한 의기의 인물로 평가하든, 그는 분명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 p108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한 변계량, 서거정, 김시습, 그리고 임제와 허균에 대한 평가는 겨레의 시문학에 새 길을 열어냈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들의 작품은 당대에도 빛이 났지만 삶을 조명한 글이나, 시대와 아부하지 않고 지켜 낸 문장에서 현실 비판을 배운다.


양반 문학뿐만 아니라 민중 시인격인 장혼이나 조수삼의 문장에서 저항정신을 느끼고, 술과 해학의 멋스러움으로 속 시원한 통쾌감을 날리는 김삿갓과 정수동의 기인 같은 행적과 글은 기성의 권위에 도전한 해학문학의 결정판이다. 현대의 시각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살피게 된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소설의 작가 이인직과 민족시인 이상화, 월북한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 식민지시대 지식인 최남선의 삶에서 항일의 정신을 느끼는 교훈을 얻게 된다. 다만, 근대인물이라면 자료사진이 더 있을 텐데, 인물사진 몇 장에 그친 점은 너무 아쉽다.


판소리와 거문고의 명인을 소개한 글에서 풍류를 즐기던 우리 겨레의 회한을 푸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고독한 화가 심사정과 광기의 화가 최북의 삶에서 허위와 위선의 시대에 맞서서 당당한 삶을 살려던 기백도 엿본다.


시인과 예술가의 혼을 조명한 이 책이 입문서의 가치를 넘어 인물의 삶을 통해서 한국사를 접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인물의 삶으로 역사를 빚어낸 글에서 민족의 긍지를 느끼고 싶은 청소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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