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불량의학>을 읽고...

의학 관련 서적들이 넘치고 있다. 아니 건강에 관한 서적들이라고 해야겠다. 최근 멜라민으로 인해 무엇보다 걱정이 늘었지만 기본적으로 현대는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중에 크리스토퍼 완제크의 <불량 의학Bad Medicine>을 읽기로 한 것은 건강과, 건강이 지닌 사회적 의미, 그리고 그 가치들을 포괄적으로 알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건강이 지닌 사회적 의미라 했지만 저자의 역량은 각종 병의 유발 요인이 될 수 있는 지방 중심의 식생활을 지양하고 운동을 할 것을 주문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에서보다는 굳은 믿음의 대상인 우유와 유기농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들추어낸 장(章)에서 빛을 발한다. 저자에 의하면 유제품을 많이 소비하는 미국, 스칸디나비아, 일본 등이 골다공증 발병률이 높을 뿐 아니라 우유는 체내에 지방이 쌓이게 하는 주요인(主要因)이며 칼슘의 체외 배출을 유발하는 동물성 단백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문제 덩어리이다. (본문 54, 55 페이지)

그런가 하면 유기농 식품을 둘러싼 사회적 오해와 왜곡들을 다룬 ’유기농의 허와 실‘ 대목은 건강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햇빛이 차단된 비좁은 곳에서 사육되는 소들이 오직 유기농 사료를 먹는다는 이유로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소라 불리는 현실을 고발하는 대목은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에서 낱낱이 밝힌 실상을 생각하게 했다. 이와 함께 채식주의자가 되고 나서 우유 반대 운동 진영에 선 유명 소아과 의사인 벤자민 스포크 박사의 사례도 건강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포크박사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다룬 김두식변호사의 <평화의 얼굴>에서 만나고 이번에 또 만나니 반갑다.)

유기농작물을 재배하려면 제초제를 쓰지 않아야 하고 그런 이유로 무성한 잡초를 솎아 내기 위해 밭을 엄청나게 갈아엎을 수 밖에 없어 결국 이 과정에서 흙 속의 산소와 질소, 그리고 기타 필수 원소들이 격감된다는 저자의 지적(본문 68, 69 페이지)은 흔히 접할 수 없는 귀한 정보이다. 저자의 지적은 우리가 생수, 항산화제,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과 세균에 대한 저항력 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들을 겨냥한다. 그러나 가장 묵직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역시 항생제 남용과 방사선 안전에 대한 지적이다.

저자는 항생제 남용에 대해 경고하는 한편 핵에너지에 대한 두려움을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그 밖에 저자의 진단에 강하게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대목은 유전자를 21세기의 희생양이라 규정한 대목이다. 이는 모든 것을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비판이다. 크리스토퍼 완제크는 생물학적으로 인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연구 결과가 모아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본문 195 페이지) 그의 주장을 발전시키면 유전자가 인종은 물론 개인적인 차별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리차드 르원틴 같은 생물학자의 문제제기가 되는 것이다.

르원틴은 작인(agent)과 원인(cause)을 구분할 것을 주장하며 “석면이나 면 보풀의 섬유가 암의 원인은 아니다. 그것들은 사회적 원인들, 즉 우리의 생산적 소비적 삶을 규정짓는 사회적 구조를 이루는 작인들일 뿐”이라는 말을 했다. 크리스토퍼 완제크가 유전적 소인(素因)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한 것은 근무환경, 사회생활, 직업의 만족도(본문 129 페이지), 섭생과 사회경제적인 지위(본문 196 페이지) 등이었음을 주목하자. (완제크가 추천도서로 지목한 <인간에 대한 오해>의 저자인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석면에 의한 복막 중피종peritoneal mesothelioma으로 사망했음은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신화적으로 채색되었거나 비과학적 기원을 가진 건강 관련 이야기들 가운데 토마스 모어와 마리 앙트아네트의 사례를 ’하루 아침에 머리가 센다고?‘ 편에서 소개했는데 <불량의학>을 읽으면 세상의 잘못된 믿음은 유명인이 관련된 속신(俗信)과 그렇지 않은 속신(俗信)으로 2분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량의학>은 그런 잘못된 속설에 대해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찬찬히 읽어보면 (저자의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저자가 백신(vaccine)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위험성 및 무지는 물론 다이옥신 같은 독성 물질에 대해서도 다루었지만 결국 말하려는 바는 건강을 위해 절제하고, 운동하고, 지나친 칼로리를 지닌 식사를 삼가고 신비의 영약에 대한 헛된 기대 등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런 주문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사항일 것이다. 고학력자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대체의학이나 주관적이며 비과학적인 요법 등에 열광하는 등 건강과 의학에 관한 역사는 얼룩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책을 일독함으로써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다. <불량의학>은 크리스토퍼 완제크의 대단한 부지런함과 열정이 낳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http://anuloma01.egloos.com/1880475(블로그)
http://blog.aladdin.co.kr/745224125/2335551(알라딘 리뷰)
http://booklog.kyobobook.co.kr/courante24/R1/334370 (교보문고 리뷰)

* 교보문고 리뷰는 우선 제 북로그에만 등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승인심사 후 전체 공개가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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