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가슴 뛰게 만드는 스토리란 무엇인가? :

우리를 가슴 뛰게 만드는 스토리란 무엇인가?



지난 6월 11일 오후 1시 30분경, H화재로부터 매우 인상적인 자동차보험 세일즈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 자동차 보험 만기일이 매해 6월 30일인데요, 경험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보험만기일 한 달 전부터 여러 보험회사들로부터 이런저런 세일즈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바쁠 때 걸려오면 정말 귀찮아요. 그래도 성격상 모질지가 못한 저는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고 대개 1분 정도는 들어줍니다.


근데 문제의 이 전화는 처음부터 약간 그 어조가 좀 달랐습니다. 그리고 매우 감성적이고 설득력 있는 음색으로 자기네 보험상품의 장점을 세일즈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하마터면 이 분의 언변에 휘둘려 이 분의 회사로 보험을 옮길 뻔 했습니다. 제가 보험을 옮기지 못한 것은 오로지 이 전화를 받기 전에,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험회사에서 그냥 보험을 자동연장하겠다는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이니까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번복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이미 제게 보험연장에 대한 약속을 받은 현재 보험회사 세일즈 담당자의 실망을 생각하니 제 성격상 보험연장건을 취소하기는 난감한 상황이었죠. 아마 그래서 그날 전화를 주신 이 분께 이런 사정까지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이 분의 언변이 훌륭했으면 세일즈 당하는 제가 오히려 비굴하게 제가 보험회사를 지금 옮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사정(?)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


어쨌거나 그렇게 사정했더니 이 분께서는 견적안내문자를 보내드릴 테니 꼭 문자보관함에 저장해 주시고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셨다가 내년에 다시 전화하면 그때는 꼭 긍정적으로 고려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 드리고”로 시작하는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이 문자를 저장해 두었기에 그 일이 지난 6월 11일 오후 1시 38분경에 있었던 일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저는 말만 그렇게 한 후 무시해도 좋은 그 문자를 왜 지금까지 저장하고 있을까요? 요 얘길 마저 드리기 전에 잠깐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란 책에 대해 먼저 몇 자 적어보도록 하죠.


우선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라는 책 제목을 보면 흔한 글쓰기 작법책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사실 글쓰기에 관련책인 줄 알고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후회는 없지만 말이죠. ^^;;) 제게 배달된 책의 경우, 책 중간에 광고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는데요, 이 책을 출간한 지식노마드라는 출판사의 기존단행본에 대한 안내광고죠. 안내광고를 살펴보면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라는 의미심장한 부제가 붙은 ≪How to be happy≫, <자기와 상대 모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협상의 지혜>란 광고카피의 ≪돌부처의 심장을 뛰게 하라≫ 등 이 지식노마드라는 출판사는 자기계발, 비지니스 협상, 컨설팅, 세일즈 등 주로 비지니스 서적을 내는 곳임을 알 수 있죠. 따라서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란 책 역시 단순한 글쓰기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서사의 핵심>을 주로 비지니스의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죠.


방금 저는 <서사>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서사... 정말 어려운 단어죠. 이미 이천하고도 몇백 년에, 평생 서사라는 개념을 가지고 씨름한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에서부터, 역시 같은 개념으로 한평생을 헌신한 에리히 아우어바흐 아저씨에게 이르기까지 서사의 본질은 많은 사상가들의 관심영역이 되었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는 서사의 본질을 <스토리텔링>이란 관점에서 파고든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수사학≫ 혹은 에리히 아우허바흐의 ≪미메시스≫와 같은 아카데믹한 깊이는 없지만, 부담없이 읽으면서─그렇습니다. 이 <부담없이>라는 말이 중요해요. 이를테면 보험세일즈에 걸맞는 화법을 터득할 요량으로 읽기에 에리히 아우허바흐는 좀 난해하단 말이죠.ㅋ─ 우리 인간에게 서사 혹은 스토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편안하게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죠.


음... 이 책의 핵심은 사실 19쪽 하단에서 20쪽 상단의 여덟 줄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래저래 생업에 쫓겨 <1박2일>이나 <개그콘서트>조차 볼 여유도 없이 바쁘신 분들은 이 여덟 줄만 읽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예산업에서부터 기업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직업인으로 살아오면서 우리는 성공적인 이야기라면 모두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본 구성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에 담긴 열정Passion, 청중을 이끌어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영웅Hero, 영웅이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하는 악당Antagonist, 영웅을 성장하게 만드는 깨달음의 순간Awareness, 앞의 모든 과정을 거친 후 반드시 뒤따르는 영웅과 세상의 변화Transformation, 이것이 바로 모든 이야기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이다. ─ 리처드 맥스웰 · 로버트 딕먼 지음,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 지식노마드(2008), 19-20쪽.


사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 다섯 가지 기본 구성요소에 대한 생생한 사례이자 각주입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핵심적인 소결론들은 고동색 타이프체의 글씨로 중간중간 요약까지 하여 주십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이런 강조문구를 볼 때마다 항상 궁금해요. 원서에도 이렇게 표기되어 있어서 이렇게 강조체로 옮긴 걸까, 아니면, 오로지 편집자의 창의력의 결과일까요? 음... 말이 길어졌네요. 저도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어 대략 이쯤해서 이 글을 수습해야겠네요. ^^;;)


음... 아까 보험세일즈 전화 얘길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 전화에도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에서 지적한 다섯 가지의 요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선 세일즈 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는 첫 음색부터 뭔가 열정Passion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나 비용면에서 상대적으로 나의 이익을 증진/저해하는 보험회사들은 영웅Hero/악당Antagonist으로 간주할 수 있겠구요, 깨달음의 순간Awareness과 세상의 변화Transformation은 자기 이익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과 그에 대한 실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분의 문자메시지를 지금까지 저장해 둔 것은 다섯 가지 기본요소에 대한 표피적인 이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메세지에는 이러한 표피성을 뛰어넘는 어떤 <메타서사/메타스토리텔링>적인 요소가 있었던 거지요.


이를테면 전화세일즈를 하면 분명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태도가 있는데 이 경계를 살짝 혹은 심하게 벗어나는 그러한 행위들 말이죠. 물론 자기의 바쁜 시간을 빼어간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나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무조건 타인의 전언을 거부한다면 그것도 같이 사는 공동체적인 삶은 아닌 것이죠. 나에게 “이야기를 건내는” 그 당사자로서는 생계가 달린 문제으므로, 내가 잠깐 시간을 할애해서 그 사람의 생계를 약간 돕는다는 것은, 그건 분명 삶의 미덕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를테면 용산전자상가 횡단보도에서 여름이면 아주머니들이 선캡 쓰고 나눠주는 이런저런 전단지를 잘 받아주는 편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환경미화원들을 위하여 길거리에다 그렇게 받은 전단지를 꾸겨서 버려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길거리가 깨끗하면 환경미화원들의 일부는 실직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 시민들은 환경미화원이나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의 생계를 위해, 가끔 길거리에 휴지도 버려주고 사소한 범죄도 저질러 주고, 때로는 불장난도 해줘야 하는 겁니다. (음... 노파심에서 말씀 드립니다만, 환경미화원부터 쓴 내용은 농담이라는 거 다들 아시죠? ㅋ)


어쨌거나 자동차보험 세일즈에 담긴 스토리텔링에서는 우리 자본주의 체제가 구가하고 있는 노동의 의미랄까 삶의 본질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메타스토리텔링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메타서사를 통해 자신의 삶의 목적이나 일의 의미에 대해 잠시 반성Reflection의 시간을 갖게 되는 거죠. (참, 여기서 말하는 반성이란, http://100.naver.com/100.nhn?docid=70511이란 의미의 반성인 거죠.)


그러므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듣고 잠시 자기 자신과 타인의 삶의 의미에 대해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갖게 되는 것, 그런 서사야말로 인간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책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은 비록 주로 비지니스의 관점에서만 스토리텔링의 재치를 탐구하고 있지만, 이러한 다섯 가지 요소에서 보다 심원한 인생의 통찰력을 찾아내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의 과제로 남게 되는 것이겠죠.




(1) 블로그 원문 : http://blog.naver.com/xenoblast/120053364392
(2) 알라딘 서평 :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989599의 첫눈내린밤(forux21)
(3) 예스21 서평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955387&CategoryNumber=001001025009의 첫눈내린밤(forlux21)


이전글꿈꾸는도서관에서 도서관과 출
다음글초등학생을 위한 노빈손의 세
댓글 작성하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