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잡기
처음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고 나서부터 한번도 일본을 미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약 7년 전 메이저급의 테니스 대회였던 것 같은데, 일본선수가 이기면 그 선수를 응원하는 일본인들 몇이라도 기뻐할 것이 싫어서 그 선수가 지기를 바라는 내가 일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많이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다. 그러나 가끔 다른 나라도 이에 공감할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그다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준이 헤이그에서 일본의 침략을 알린 지 100년이 지났지만,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핍박 받은 것은 그들과의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19세기 이후 제국주의와 식민정책에서 자유로운 서방국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피식민국이나 식민국이 아닌 나라는 3개국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실질적으로는 타국의 통제를 받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세계가 먹고 먹히는 관계였다고 한다. 그보다 훨씬 전이지만 한 문화와 인종 자체를 몰살(멸종이라고 해도 될까?)시킨 스페인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 판이니, 식민지는 자본주의 역사의 흐름 속의 어두운 면이었다고 반성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느낌이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임진왜란으로부터 꼭 300년 뒤 일본으로부터 파견된 건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조선을 자세히 기록해간 자의 책을 보며 갖가지 상념이 떠올라 다음 장을 넘기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 자가 조선을 정탐한 것뿐만 아니라 조선을 의도적으로 비하해서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자신이 보기에 조선이 미개한 만큼(아프리카에 비유한 것을 보니 아프리카도 다녀온 것인가?) 서구 열강이 일본을 보면 그러할 것이라는 걸 보면 좀 더 전력을 다하자는, 자국민에 대한 독려가 목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자기들이 조선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참 이놈들은 대책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우기는 놈들이니, 이놈들은 칼이 생기면 칼로 우리를 괴롭히고 총이 생기면 총으로 괴롭히는 사이코패스 국가가 아닌가. 적반하장으로 줄기차게 내 땅 내놓으라는 망발을 일삼으니 그 목적도 심히 의심스럽다. 재무장을 위한 자국 내 불안감 조성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과연 이들이 선량한 세계시민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든다.
이 책 속에 묘사된 1893년의 조선은 전근대국가의 전형이다. 교육을 통한 산업인구의 확보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만들어낸 근대국가의 지식인이 보기에는 조선인은 국민이 아니라 미개인일 뿐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관리들은 부패했고 훈련되지 않은 군대는 건달들의 집단과 같았다. 그렇다면 조선이 망한 가장 큰 원인은 조선왕조에 있었을 것이다. 정조 사후 100년 만에. 어쩌면 시민혁명으로 서양과 같은 근대국가의 길로 접어들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을 것이다. 미국은 동남아로 일본은 중국대륙으로, 늦게 뛰어든 나라들의 막바지 식민지 경쟁으로 인해 만약이라는 말로 역사를 가정해본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도 당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력이 약한 나라의 산업을 황폐화시키고 거대 다국적기업은 19세기말 군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세계화가 미국화라는 말이 나오듯이 여전히 세계는 하나만을 쫓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영국의 식민정책을 따라 하듯이. 단순히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대안은 아닐 것이다. 뒤처지는 것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면.
이 모든 이유를 뒤로하고 이 책을 보며 즐거운 순간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문틈으로 엿보듯이나마 알아가는 것이 때로는 웃음짓게 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했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들이 단순하고 더러울 수 밖에 없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더럽지 않은 조상이 어디 있겠는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은 관리들이지 민초들이 아니고, 더군다나 그것이 국민성이라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한다. 국민성이라는 것이 따로 있지도 않겠지만. 읽으면서 강경애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황량한 빈 벌판에 괴로운 영혼들… 이들을 가슴에 안고 다독거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후대의 평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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