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으로 대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모험가
서평글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느림의 미학으로 대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모험가 플래닛워커/zixia〉
굽어진 철로를 따라 걷고 있는 인상좋게 수더분하게 생긴 흑인이 눈에 들어온다. 등에는 커다란 빨강 배낭과 파란 침낭을 메고 어깨에 걸친 밴조란 악기를 손으로 튕기며 한편 만족한듯 한편 눈부신듯 눈웃음을 은은히 머금고 있다. 마치 그가 지나온 발자국 마냥, 「22년간의 도보여행과 17년간의 침묵여행」이란 삐뚤한 부제가 눈에 밟힌다. 단순히 「남들 가니 나도 간다」식의 사진만 요란한 눈요기 관광책자는 분명 아니고, 그저 일상을 벗어나고파 떠난 한 청춘의 객기에 어린 방랑기도 아님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 무엇보다 그냥 여행도 아닌 「침묵생활-도보생활」의 병행이란 점, 그리고 이십여년이란 긴 세월을 훌쩍 넘겨버린 절대 녹녹치 않은 개인사가 강한 메시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사실 이정도의 체험기라면 그 옛날 어느 신비주의 종파의 독실한 순례자나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간 중국 법승이나, 아니면 인도의 어느 괴팍한 성자나 철저한 금욕고행을 수행중인 요기나, 아니면 고비 같은 황량한 사막이나 히말라야 같은 고산의 깊은 동굴에 칩거하고 있는 은둔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도 하다. 포레스트 검프도 분명 탄복하고 그에게 「우리 친구먹자」할 것이다.
걷기의 생활화와 침묵의 일상화라, 난 어떤가? 가능한가? 걷기는 하루에 길어야 두시간 정도의 운동 대용이지 일상생활의 기본이 된 적은 없었다. 지금 지하철 서너역쯤은 자전거를 이용해 다니지만 도보이동은 워낙 시간과 체력소모가 큰지라 저자처럼 120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거리를 여러날 넉넉 잡고서 걸어갈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침묵의 맹세는? 어른들과 같이 조석으로 생활하고 급히 화장실에 가도 휴대전화는 챙기고 가는 게 매너로 간주되는 우리사회다. 또 원체 말과 글로 입에 풀칠해야 하는 팔자라 반달은 커녕 반나절의 침묵도 유지키가 어려울 듯하다.
이토록 신산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아름다운 지구인 존 프란시스는 해냈다. 몸소 실천하는 플래닛워커로서 그는 내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어 내었다. 먼저 그는 동력을 사용하는 운송수단(자동차, 모터보트 등)을 버리고 인류최초의 교통수단인 두 발로 도보생활을 시작한다. 걷기생활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1971년 1월 18일(책에서 날짜가 16일17일18일로 조금씩 달리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밑에서 유조선 두 척이 충돌하여 일어난 기름유출사고다. 이 사건은 환경오염과 에너지 위기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고, 말그대로 「지구인」인 자신을 재조명하게 했다. 좀더 포괄적인 계기는 죽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성찰과 자각이라 하겠다. 어릴 때 겪은 이모의 사망 그리고 기름유출사고 몇 달 후에 전해들은 가까운 이웃사촌 제리의 죽음이 결단의 추동력이 된다. 그런데 걷기생활은 시작에 불과했다. 1973년 27살 생일을 맞이해 저자는 침묵생활이란 또하나의 결단을 내리고 이후 17년간 이를 선택으로 지켜나간다. 또한 한걸음 더 나아가 1982년 도보순례를 통해 환경보호와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조직적으로 전달하고자 비영리교육기구 「플래닛워크」를 설립한다.
자신의 평생 목표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 프란시스는 기나긴 머나먼 순례길에 오르고 일상 속에서 동중정動中靜이란 느림의 미학을 구현한다. 그에게 순례길이란 사람과 사람이 오고 가는 드넓고 촘촘한 인연을 짜집는 한 틀의 물레요, 한 인간의 평생 족적이 담긴 「인간지형」을 드러낸 한 폭의 지도다. 프란시스는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적마다 「경험적 반성」을 매개로 자신의 모험가적 삶/체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도보, 침묵 그리고 그때그때 보고 지나가는 풍물의 스케치가 반성과 성찰의 구체적 수단이 된다. 신념을 오롯이 실천해가는 삶은 진실되고 아름답다. 그의 신념이 스스로를 가두고 스스로 한계지우는 감옥이 되었을 땐 그는 노선변경에 주저하지 않았다. 22년 만에 그는 브라질에서 자동차를 탄다. 그는 자신의 또렷한 발자취와 확신에 찬 몸짓으로 우리에게 증언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