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단]나를 통제하는 하나의 권력, ‘수치심’
나를 통제하는 하나의 권력, ‘수치심’
<수치심의 역사>라는 제목은 여느 유럽의 문화사를 다루는 책보다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치심은 다분히 주관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 수치심을 정의했냐부터가 내 관심사였다. 그러나 책의 서두에서 이미 장 클로드 볼로뉴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수치심의 범위를 한정시키고 구체화시키고 있다.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명확한 그의 논증은 다분히 반할 만한 수준이다. 수치심을 다룬 거의 모든 자료를 총망라하여 수치심과 사회성의 관계, 수치심이 유발한 고증된 역사 속의 사건들, 인체재현과 시대성과의 관계를 노련한 글쓰기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문헌학자이자 중세역사 연구가인 저자의 역량을 보여주는 듯 방대한 고증자료들을 토하고 있으니 이 또한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에피소드만을 열거한 역사도 아닌 인문서도 아닌 거창한 제목의 <수치심의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걱정을 하고 있는 독자라면 집어치우고 일단 들어도 될 만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박한 책 디자인에다가 예술적 재현을 다룬 책 치고는 예술작품을 참고로 제시하는 세심한 배려도 없지만 방대한 문헌자료의 연구결과물로서 알찬 책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수치, 무치, 파렴치 등으로 비슷한 감정들을 구체화하고 있다.(수치심과 비슷한 언어들과의 비교대조를 한 눈에 볼만한 도표가 부록에 실려있다) 그리고 나체(벌거벗음, 신체의 일부 혹은 전부의 노출)에 대한 수치심을 중심으로 역사 속에서 수치심의 사회적 가치관이 가져온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에서 하나의 특이점 내지는 주목할 만한 하나의 논지는 수치심과 언어의 관계이다. 우리는 신체의 노출을 통한 수치심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신체부위 특히 성기관과 관련된 용어나 종교적 저주 등 듣고 읽는 것만으로 수치심을 주거나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있다. 시각적 영역의 수치심 뿐 아니라 역사, 종교, 예술을 통해서 언어(어휘)의 (소리, 철자의 유사성 때문에 발생하는) 변화를 수치심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수치심은 그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의복,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장 클로드 볼로뉴의 <수치심의 역사>와 같은 저서가 국가, 지역, 민족 등에 한하여 또 다른 연구들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수치심의 기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게 될 계기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의미의 권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 혹은 국가, 혹은 가부장적 의식, 개인이 만들어 내는 수치심의 의미는 하나의 권력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급에 있어서 하위계급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수치심과 신체노출의 범위는(이러한 차별적 의미의 발단과 변화는 소변보는 자세와 용변장소의 한정을 주 내용으로 하는 챕터에서 알 수 있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몸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하고 자연스레 예술에 있어서 여성을 시선의 대상 등으로 재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치심이 문명의 산물이며 억압의 근거였다는 사실은 나체주의의 발단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노출의 성격, 즉 보여지는 나체가 우연성인지, 의도적인지, 전시된 몸인지에 대한 시선의 권력을 전제하고 있는 장 클로드 볼로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책의 부록에 나체주의에 관한 짧은 글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는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독서과정 중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1부에서는) 역사 속 수치심이 만들어낸 의상과 소품들의 삽화, (2부에서는) 언급된 회화, 조각, 문학, 연극, 광고사진, 영상 캡쳐 등의 컬러풀한 자료의 첨부가 있었다면 하는 것이다. 만약 이후에라도 그러한 자료첨부가 가능해진다면 보다 쉽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될 뿐 아니라 내용과 논증의 면에서도 보다 완벽한 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또한 예술작품의 내용과 인체재현에 그치지 않고 수치심과 컬러 혹은 명암까지 연관시키는 해석이 가능해질 것이며, 그림과 조각에 행해진 훼손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권력까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심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역사를 통해 수치심, 부끄러움이라는 의미의 흐름
-다른 시각에서 본 16~19세기의 역사
-예술(조형, 연극, 영화, 언어문학 등)에서의 재연에서 수치심의 의미 흐름 읽기
-연극사에서의 누드 출현과 공연에서의 누드의 재현 변화
-수치심의 가부장적 기준에 의한 여성 재현
-남성우월주의 시대로서의 르네상스
-비속어 등 언어의 변화과정에 있어서 사회, 도덕적 기준이 미치는 영향
-문화의 흐름과 의미의 흐름에 대한 고증방법
-서양의 문화 내에서 수치심과 일상생활의 관계
-서양문화와 비교대조하여 동양 혹은 민족, 특정국가, 지방의 문화연구
-의복, 소품 등의 실용성과 대조되는 문화적 의미
-예술과 외설의 구분의 모호성에 대한 문제제기
-포르노그라피의 정의
-광고의 폭력적 신체노출과 매력의 경계
-수치심의 자본주의적 이용과 쾌락의 대상으로서의 신체
위와 같은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있어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시각, 청각, 종합적 예술, 언어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풍부한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속독을 즐기는 나에게도 아끼고 아껴서 오랜 시간 음미하며 읽고픈 책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펼쳐보게 될 것 같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저자 장 클로드 볼로뉴가 먼저 연구과정을 거치면서 접하고 참고한 수많은 자료의 목록(주석의 출처를 밝히는 페이지만 33페이지에 달한다)이 매우 큰 재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이런 독특한 시점을 가지고 수고스러운 연구를 거쳐 완성도 높은 책이 올해에서야 한글로 변역된 것이 통탄할 일이라며 또한 감사해야 했다. 그것도 프랑스 외무부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출판번역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출간된 책이라니 세계의 가쉽을 누구보다 빨리 알 수 있는 2008년 현 시점에서 세계의 인문연구에 대해서는 내가 어찌나 문외한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평 올린 개인 블로그 : 엠파스 블로그 http://blog.empas.com/fox9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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