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직업의 세계를 찾아서
행복한 직업의 세계를 찾아서
- 모니카 페트,『행복한 청소부』(풀빛, 2000)를 읽고
모든 학생들이 장래 직업으로 대통령이나 장군 또는 대기업체를 이끄는 사장만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희망 직업이 다양화되고 있다니 변화가 반갑다. 하지만 직업의 귀천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을 교정시켜 줄 좋은 책으로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가족이 함께 보기에 더 좋을 책이다. 어린 학생들보다는 직업 선택을 앞둔 청소년이나, 직업을 갖고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행복한 청소부』를 읽다보면 절로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현재 나의 직업에 불만족스러워 했던 적은 없는지, 생활의 보람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는지 등등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또한 좋은 직업을 통해 삶의 성공을 이뤄야 한다고 아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던 삶을 반성하게 된다.
『행복한 청소부』을 읽다보면 처한 환경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회나 인류를 위해 공헌한다는 것은 무슨 대단한 업적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즐겨하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화를 읽는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느낌을 공유하려면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권하고 싶다. 직업의 세계라든가 직업의 귀천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이 읽었다가는 결코 감동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파란색 작업복의 청소부가 음악과 미술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그 삶 자체가 동화적이다. 글루크, 모차르트, 바그너, 바흐, 베토벤, 쇼팽, 하이든, 헨델의 음악 세계와 접하면서 이미 파란색 청소부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괴테, 그릴파르처, 만, 바흐만, 부슈, 브레히트, 실러, 슈토름, 케스트너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면서 그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독서 전에 책이 언급하고 있는 음악가와 작가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들여다보면서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책읽기가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파란색 자전거를 타는 파란색 작업복의 청소부는 직장의 일을 즐거운 생활의 하나로 승화시키고 있다. 청소를 하면서도 혼잣말처럼 음악과 문학에 대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어느새 그의 즐거운 삶에 주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네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할 만큼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파란색 작업복의 청소부는 교수직을 거절한다.
“나는 하루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생각인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자신의 직업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파란색 작업복 청소부. 그의 삶이 부러워 그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얘기는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청소부』를 읽는 동안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 1632∼1677)를 떠올렸다.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갈고 다듬는 세공사 일을 하면서도 독서를 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글을 쓰지 않았던가.
1673년 경 하이델베르크의 철학 교수직 제안까지 받았지만 스피노자는 행복한 청소부처럼 거절했다. “교수라는 자리가 지극히 거룩한 자리인 줄 알지만 그래도 남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사상의 자유가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는 이렇게 안경을 갈아서 밥을 먹고 지내는 것에 만족하며, 나의 직업도 교수자리 못지 않게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밝힌 것이다. “공공의 영역에서 가르치는 것은 결코 소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훌륭한 기회를 받아들이도록 제 자신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는 스피노자의 단호함에서 행복한 삶을 읽는다.
아직도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까? 아직도 직업이나 직급에 따라 좋고 나쁜 가치를 만들어 스스로의 행복을 제한하는 이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행복한 청소부를 만나 그가 즐기는 삶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행복한 청소부가 빠져들었던 음악과 문학의 즐거운 세계로 찾아가 보면 어떨까?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이런 청소부가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 같은 안경알 세공사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짜장면 배달에 충실하던 사람을 대학강단에 초대한 적이 있다. 또 태백과 정선에는 시를 쓰면서 행복한 삶의 파장을 그려내는 광부도 있다. 정환구 시인과 성희직 시인이 그들이다.
우리 주위에는 동화 속의 행복한 청소부나, 스피노자 같은 안경알 세공사가 참 많이 있다. 일터에서 활짝 웃음 짓는 행복한 그들, 행복한 목소리로 ‘좋은 하루!’ 하고 외치는 그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은 행복한 청소부이며 철학자 스피노자이다. 동화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