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로드>: 책으로 경험하는 혹독한 우울함
"ROAD"
무엇을 의미할까? 앞과 뒤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여정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표지가 주는 인상 때문인지, '길'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만의 연상이 그런지.
궁금함이 증폭될대로 증폭된 후에 결국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들이 왜 길에 있어야 하는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호한 암시 속에 두 부자는 위험하고 외로운 도보를 늦추지 않는다.
세상엔 이미 종말이 온 것이다.
짙게 드리운 불길한 잿빛 하늘과 차가운 비바람의 날이 선 공격이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절망적인 미래를 대변하고 있다.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 두 부자를 쉼없이 '로드'로 내몬다. 사람이지만,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사람을 먹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명확한 설명은 없다. 내 상상만으로 그 윤곽을 잡아가야 하니 편한 책 읽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공포감에 몸서리 칠 만큼 무섭게 다가오는 현실감 때문이다.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끝을 맞이하고 견뎌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작가는 내내 평정을 잃지 않고 무덤덤하게 글을 쓰고있다.
두 부자가 나누는 대화는 그래서 간결한 것 같다. 극한에 몰리며, 극한에 순응한 사람의 초연한 경지가 아닐런지.
이미 끝이난 세상인데도 이야기는 새롭게 태어난다. 단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도 온 인류를 대변하고 있다.
결코 놓을 수 없는 생명은 무엇을 희망하며 붙들고 있는 것일까?
부끄럽게도 한줄의 희망을 난, 책 속에서 찾지 못했다.
아버지에겐 아들이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희망으로 삼던 아버지를 잃은 아들에겐 무엇이 희망이었을까?
그가 걸어온 험난했던 'ROAD'가 이제부터는 달라진다는 보장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책 속 세상에 길들여진듯 기꺼이 그 상황을 받아들인 나를 의식하며 깜짝 놀랐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다뤘던 영화 때문일 것이다.
20여 년 전에 [그날이 오면]이란 영화를 봤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핵폭발 이후 인류가 맞이하게 될 상황이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잡초 한 포기도 자랄수 없는 황폐한 회색빛 토양, 약탈과 겁탈이 판을 치는 무법천지.
다채로운 삶의 색깔을 통째로 빼앗고 무채색의 어두움만을 남겨 놓은 그 영상들은 어린 나에게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이미 그때 '종말'을 본 것 같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내내 침전물처럼 내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그 위에 새로운 침전물이 쌓이게 될 것 같다. [로드]라는 침전물.
가끔 흔들리면 순식간에 들고 일어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킬 것이다.
그 흔들림으로 멸망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느낄 것이고.
책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주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제 좀 더 느긋해진 마음으로 다시 책을 보려한다.
미처 못보고 지나쳤던 세상이 그 안에 들어있을 것 같은 새로운 기대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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