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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쓰는 국문론집성

풀어쓰는 국문론집성

근대 계몽기 국어국문 담론의 현대적 해석을 위하여
23,000 원
  • 저자 :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HK사업단
  • 출판사 : 박이정
  • 출간일 : 2012년 05월 21일
  • ISBN : 978-89-6292-315-5 (93710)
  • 제본정보 : 반양장본

도서 분야

손금이나 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 그의 과거와 앞으로의 삶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인생이 손금의 모양이나 얼굴의 생김새에 ‘표상’되어 있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사주팔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사주에 한 사람의 운명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기호를 해석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듯, 사주팔자를 해석해 내면 그의 인생이 보인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이름을 적절히 지어 사주에서 음양오행상 모자란 기운은 보충하고 너무 과한 기운은 눌러 줄 수도 있다. 글자 한 자 한 자는 모두 ‘목화토금수’의 오행 가운데 하나에 배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한자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과학적’이기로는 그 상대가 없을 것 같은 훈민정음도 예외가 아니다. 아(牙, ㄱ) - 설(舌, ㄷ) - 순(脣, ㅂ) - 치(齒, ㅅ)- 후(喉, ㅇ)는 각각 ‘목화토금수’의 오행에, 그리고 방위(동-남-중-서-북)에, 계절(춘-하-계하-추-동)에 색깔(청-적-황-백-흑)에, 심지어 신체의 장기(간-심-비-폐-신)에까지 빈틈없이 대응된다는 것이 훈민정음 창제자들의 생각이었다.《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15세기 이후 유럽의 지성사라는 맥락 속에서 언어-기호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에서 푸코는 유사성의 에피스테메로 특징지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 개념이 성립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부의 분석, 자연사, 일반문법과 같은 당시에 통용되던 학문의 분석을 통해 분명히 한다. 예컨대 화폐의 가치가 금이나 은 같은 화폐(주화) 자체의 내적인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표상’하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식이 바로 고전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화폐를 구성하는 물질적 실체는 이제 그것이 표상하는 가치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기호와 그것이 표상하는 대상이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듯이.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이러한 기호와 표상에 대한 인식이 특정한 시기에 발생한 특수한 것이지 결코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코가 이를 보여주기 위해 문서고를 뒤져가며 서구의 근대적 담론 구조를 분석해 나갔듯이, 우리 역시 이른바 근대계몽기에 쏟아져 나온 각종 문헌들을 뒤져가며 당시의 담론이 어떤 지형을 이루고 있었는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 《풀어쓰는 국문론집성》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하기 위한 기초 자료라 할 것이다.1890년대 중반 이후의 각종 신문과 잡지에는 ‘국문’과 관련된 글들이 제법 눈에 띈다.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편리하도록 만들겠다’는 《독립신문》의 그 유명한 창간사에서부터 ‘기자(箕子)가 전해준 한문뿐만 아니라, 우리 성왕이 창제하신 국문도 함께 사용하겠다’는 《황성신문》 창간호까지 국문에 대한 논의가 백출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그 내용은 한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그 때문에 더 빨리 지식을 습득하여 ‘실상사업’에 나갈 수 있는 ‘국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 주이고, 이와 더불어 이 ‘국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해졌는지 그 ‘연원’을 따지는 글, 그리고 그 사용 방법에 대한 의견(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동음이의어 구별을 위해 방점으로 장단을 구별해야 한다) 등이 제시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국문’에 관한 이러한 다양한 논의 속에서 ‘국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조사로는 1906년 이전에는 ‘국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일상적인 대화, 심지어 매체에 실린 글에서도 ‘한글’과 ‘국어’를 혼동하여 쓰는 일이 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국어’라는 말을 안 쓴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 다시 말해 ‘국어’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만약 그렇다면 ‘국어’로 표현되는 개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물론 일본으로부터의 유입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國語’라는 말은 이미 1860년대부터 각종 문헌에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었으며, 1890년대 중반부터는 국가 의식이 강하게 투사된 ‘國語’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1881년의 신사유람단 이래 수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을 왕래하며 여러 지식과 문물을 받아들인 것을 고려한다면, ‘국문’을 논하던 이들이 1905년까지 ‘국어’라는 말 자체를 몰랐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가 동아시아의 전통적 담론 체계에서는 논의의 대상으로 다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중국언어학사》의 저자 왕력이 ‘5·4운동 이전에는 중국에 언어학이 없었다’라고 언급한 것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데, 흔히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언어학이라 불리는 소학(小學)은 천리(天理)를 담은 경전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한자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었고, 성운학과 같이 소리의 체계를 다룬다고 해도 이때의 소리는 어디까지나 한자의 소리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의 전통적 담론 체계에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언어’라는 대상 자체를 인식할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언어’를 문자로부터 분리해 내고 마침내 문자는 언어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담론 체계 없이 ‘국문’으로부터 ‘국어’로의 비약은 불가능했었다는 말이다.이 책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민수·고영근 편의 《국문론집성》에서 출발한다. 1880년대부터 1910년에까지 신문 잡지에 실린 ‘국문, 국어’ 관련 글을 모은 《국문론집성》이 처음 나온 것은 1985년으로 국어학계에서도 이른바 ‘개회기’가 주목받던 때이다. 당시 주시경의 저술을 중심으로 초기 국어학 관련 문헌들을 현대 언어학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그러한 흐름은 쇠퇴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80년대 앞서거니 뒤서가니 세워졌던 주시경연구소와 한힌샘연구소가 모두 9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을 접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은 ‘언어적 근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당시의 문헌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시 한 번’ 국어학계에서 ‘언어적 근대’의 문제가 주목의 대상이 되어, 결과적으로 언어학과 다른 인문학자들이 소통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사실 당시의 문헌은 국어학 전공자들이 읽기에도 버거운 부분이 많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문장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글들이 많아 아예 글 전체가 한문 문장이거나, 국한문 혼용이라 하더라도 현토체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문학적 지식이 없이는 읽어내기가 어려운 글들이 태반이다. 기본적으로는 이 책의 체제는 《국문론집성》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해당 글의 원문만 제공되었던 《국문론집성》과는 달리 각각의 글에서 먼저 현대어 번역문을 제시한 다음 이의 원문을 실었다. 현대어로 푸는 과정에 각종 고사나 전고 등은 가급적 각주에서 상세히 풀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해당 글에서 나타나는, 당시로서는 새로웠을 근대적 개념어들을 정리하였으며, 권 말에는 이 글들이 실렸던 매체와 그 필자에 대해 개략적으로 해제하였다.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글을 쓴 사람과 그 글이 실린 매체를 아울러 참고하도록 한 것인데, 국어학 전공자나 그 밖의 인문학 전공자나 모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싣고자 했다. 
해제

1. <논셜> ≪독립신문≫ 1호
2. <잡보> ≪독립신문≫ 26호
3. <국문론> 지석영 ≪大朝鮮獨立協會會報≫ 1호
4. <국문론> 주상호 ≪독립신문≫ 47호, 48호
5. <漢文字와 國文字의 損益如何> 신해영 ≪大朝鮮獨立協會會報≫ 15호
속편: <漢文字와 國文字의 損益如何(續)> 신해영 ≪大朝鮮獨立協會會報≫ 16호
6. <社說> ≪皇城新聞≫ 1호
7. <국문론> 주상호 ≪독립신문≫ 134호, 135호
8. <國文漢文論> ≪皇城新聞≫ 20호
9. <國文原流> ≪皇城新聞≫ 96호, 97호
10. <타국 글 아니라> ≪독립신문≫ 112호
11. <두 가지 힘> ≪독립신문≫ 202호
12. <國文一定法意見書> 이능화 ≪皇城新聞≫ 2615호, 2616호 / ≪大韓自强會月報≫ 6호
13. <國文源流> ≪少年韓半島≫ 1호
14. <국어와 국문의 필요> 주시경 ≪西友≫ 2호
15. <國文便利 及 漢文弊害의 說> 강전 ≪太極學報≫ 6호
속편: <國文便利 及 漢文弊害의 說(續)> 강전 ≪太極學報≫ 7호
16. <國語維持論> 박태서 ≪夜雷≫ 1호
17. <國文과 漢文의 關係> 한흥교 ≪大韓留學生會學報≫ 1호
18. <必尙自國文言> 주시경 ≪皇城新聞≫ 2442호, 2447호
19. <국문론> 심자 ≪京鄕新聞≫ 30호, 31호
20. <국민신보 발간> ≪大韓每日申報≫ 1호
21. <大韓國文說> 지석영 ≪大韓自强會月報≫ 11호
속편: <大韓國文說> 지석영 ≪大韓自强會月報≫ 13호
22. <敎授와 敎科에 對야> 장응진 ≪太極學報≫ 13호
속편: <敎授와 敎科에 對야> 장응진 ≪太極學報≫ 14호
23. <학문> 박일삼 ≪自新報≫ 1호
24. <漢字統一會開設에 關 議見> ≪西友≫ 13호
속편: <漢字統一會開設에 關 議見> ≪西友≫ 14호
25. <音響 니야기> 연구생 ≪太極學報≫ 16호
26. <論漢文國文> 여규형 ≪大東學會月報≫ 1호8
27. <國文과 漢文의 過渡時代> 이보경 ≪太極學報≫ 21호
28. <漢文과 國文의 辨別> 정교 ≪大東學會月報≫ 4호
29. <論國文> 이종일 ≪大韓協會會報≫ 2호
30. <國漢文論> 이승교 ≪西北學會月報≫ 1호
31. <小學敎育에 對 意見> 유길준 ≪皇城新聞≫, 2799호
32. <一斧劈破> 이기 ≪湖南學報≫ 1호
속편1: <一斧劈破> 이기 ≪湖南學報≫ 2호
부록1: <與呂荷亭書> 황희성 ≪湖南學報≫ 2호
부록2: <國漢文輕重論> 매일신보 ≪湖南學報≫ 2호
속편2: <一斧劈破> 이기 ≪湖南學報≫ 3호
33. <文法을 宜統一> 신채호 ≪畿湖興學報≫ 5호
부록: <小別漢文> 규표자 ≪畿湖興學報≫ 5호
34. <語學의 性質> 원석산인 ≪大韓協會會報≫ 11호
35. <한나라 말> 주시경 ≪普中親睦會報≫ 1호
36. <今日我韓用文에 對야> 이광수 ≪皇城新聞≫ 3430호, 3431호, 3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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