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정의 산문집은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자 자기 안의 편견을 응시하며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익숙한 장소감각을 뒤흔드는 풍경, 역사와 문화가 판이한 환경에서 성장한 타자들의 언어와 접속하면서 여행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_ 백야 3
1장 / 대포 소리와 불꽃놀이
낙타의 눈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세계
그라나트
칠월 삼일의 기록, 쥐로비치
카타리나와 함께
인간에 대한 예의
2장 / 노오란 꽃가루가 검은 원피스 위로
미아네 집
어떤 장례식
자장가
사드코
페트로프 보드킨의 정물화
아르히프 쿠인지의 아틀리에에서
3장 / 트라페자
키지
발람수도원
마슬레니차
헬레네 쉐르벡이 그린 북구의 얼굴들
알바 알토의 공간
비푸리도서관
4장 / 오늘만큼은 공중 도약을
쿠스코의 지진을 멈춘 검은 예수
잉카의 오래된 봉우리
계급과 고도高度 라파스
영원의 시각화 우유니
쿠스코의 크리스마스
불시착, 메데인
5장 / 남루한 폐허의 고향 신들
집에 얽힌 사연 소비에트 사회의 주거 공간과 영화 두 편
변혁의 불씨
혁명이 낳은 신산함
시가를 운동화와
불법이라던 곳 북키프로스에서 생긴 일
6장 / 자연의 비명
정말 아무렇지 않은 맛
코로나 시대 타자성의 체험
몸 없는 거인(Giant Without a Body)
냄새와 기억의 사회사
중고 시장
비외르비카의 람다, 그리고 뭉크
이야기를 끝내며 _ 다정히 마주 보고
익숙지 않은 지역과 그곳의 음식과 사람들, 음악가와 화가들의 이야기
낯선 세계에 발 들여놓기, 자기 안의 편견을 응시하며 경계 넘어서기
“낯선 삶의 궤적이 그의 산문에 남기는 아름다운 사유의 흔적”
『낙타의 눈』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풍경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낙타의 눈’. 흔히 ‘낙타’를 떠올리면 중동의 어느 사막 속 낙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동유럽의 낙타를 이야기한다. 러시아의 서쪽 끝과 남미, 그리고 노르웨이, 민스크와 페테르부르크, 카렐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자가 만난 풍경과 사람, 예술작품과 유적들의 이야기 속 저자의 아름다운 사유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백야
새벽. 아이가 온다. 오줌 싸려고
일어났다가 건조해진 콧속이
근질거려 콧등을 비틀다가 코피가
흐르고, 잠결에 휴지를 둘둘 말아
콧구멍 쪽을 대충 훔치고는 내 옆으로 와
눕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꾼 것처럼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 아이를 바라보다 하늘을
향한 동그란 뺨 위로 내 편평한 뺨을
대본다. “따뜻하네, 엄마 얼굴.” 아이는
배냇 웃음 같은 웃음을 짓는다. 백야가
계속되고 새벽이 길어지고 아이도 나도
지난 꿈과 아직 꾸지 못한 꿈을 다시
꾸고 또 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