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중심추를 바로 세우는 네 글자 지혜
“거품처럼 허망한 바쁨보다, 평온한 고요를 깃들여라”
‘다함이 없는 보물’ 같은 한문학 문헌들에 담긴 전통의 가치를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고전학자 정민 교수가 《습정》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펴낸 《일침》《조심》《석복》《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이은 ‘세설신어(世說新語)’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낮추는 법 없이 제 할 말만 한다. 듣기를 거부하는 소음의 언어로 세상은 갈수록 시끄럽다. 거짓 정보, 가짜 뉴스에 덩달아 일희일비하며 정신없이 흔들리는 사이, 정작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서 빛바래 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습정(習靜)’의 자세. 침묵과 고요를 익히는 연습이다.
이 책은 고요히 자신과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을 네 글자 행간에 담아냈다.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부터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까지, 풍부한 식견과 정치한 언어로 폭넓게 사유한다.
세상은 항상 덕을 채워나가는 쪽과 제 복을 털어내고 덜어내는 쪽의 길항으로 움직인다. 마음 간수가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절실하다. 날마다 조금씩 쌓아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진실의 목소리에 더 낮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 잊어버린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귀중한 지침이다.
소음의 시대를 꿰뚫는 간명한 통찰의 완결판
이 책은 100편의 글을 ‘마음의 소식’, ‘공부의 자세’, ‘세간의 시비’, ‘성쇠와 흥망’으로 나눠 묶었다.
제1부 〈마음의 소식〉은 세상의 파고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마음을 지키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일에 닥쳐 아등바등 발만 구르며 사는 일은 고해(苦海) 그 자체다. 바깥으로 쏠리는 마음을 거두어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낙담하지 않고 곧 지나가겠지 한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는 수가 있다고 꼬드기면 못 들을 말을 들은 듯이 몸을 움츠린다.
행실이 깨끗한 사람은 저자에 들어가서도 문을 닫아걸고,
행실이 탁한 사람은 문을 닫아걸고서도 저자로 들어간다.
行潔者入市而闔戶 濁行者闔戶而入市
_ 팽여양(彭汝讓), 《목궤용담(木几冗談)》 중에서
내 몸이 어디에 있는가보다, 내 마음이 있는 곳이 더 중요하다. ‘침정신정(沈靜神定)’, ‘두문정수(杜門靜守)’, ‘습정양졸(習靜養拙)’ 모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설명한다. 엉뚱한 데 가서 턱없이 찾으니 마음이 자꾸 들떠 허황해진다. 가만히 내려놓고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제2부는 늘 반듯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공부의 자세〉이다. 말을 아껴야 안에 고이는 것이 있다는 ‘득구불토(得句不吐)’, 부족해도 안 되고 넘쳐도 못쓴다는 ‘약이불로(略而不露)’, 깊이는 여러 차례의 붓질이 쌓여야 생긴다는 ‘유천입농(由淺入濃)’ 모두 말은 달라도 결국 의미는 같다.
오만함을 자라게 해서는 안 되고, 욕심을 마음껏 부려서는 안 된다.
뜻은 한껏 채우려 들지 말고, 즐거움은 끝까지 가서는 안 된다.
敖不可長 欲不可從 志不可滿 樂不可極
_ 《예기(禮記)》〈곡례(曲禮)〉 중에서
뭐든 조금 부족할 때 그치는 것이 맞다. 목표했던 것에 약간 미치지 못한 상태가 좋다. 음식도 배가 조금 덜 찬 상태에서 수저를 놓는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한껏 하고 양껏 하면 당장은 후련하겠지만, 꼭 탈이 난다. 끝까지 가면 안 가느니만 못하게 된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제3부는 〈세간의 시비〉이다. 말이 가장 무섭다는 ‘가외자언(可畏者言)’, 마땅히 갖춰야 할 열 가지 처세법 ‘처세십당(處世十當)’, 취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취몽환성(醉夢喚醒)’이 이어진다.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일에 대해 판단할 때 꼼꼼히 헤아리지 않는다면
재앙을 불러들이고 만다. 이 때문에 침묵이 귀한 것이다.
然居亂邦 應接事物 樞機不密 禍之招也 故嘿之為貴也
_ 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중에서
침묵하면 비겁하다 하고, 의견을 내면 그 즉시 비난한다. 일마다 시시비비를 갈라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니 세상에 싸움 잘 날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바른 판단은 어렵다. 횡행하는 거짓 정보 앞에 수시로 판단력이 흐려진다. 부화뇌동 없이 정신의 줏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
제4부 〈성쇠와 흥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대목을 소개한다.
작은 일을 가볍게 보지 말라. 작은 틈이 배를 가라앉힌다.
작은 물건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작은 벌레가 독을 품고 있다.
소인을 그저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소인이 나라를 해친다.
勿輕小事 小隙沈舟 勿輕小物 小蟲毒身 勿輕小人 小人賊國
_ 《관윤자(關尹子)》 중에서
사람은 사소한 일에서 그 바탕이 훤히 드러난다. 작은 일을 건성으로 하면서 큰일을 촘촘히 살필 수 없다. 작은 틈 때문에 배가 침몰한다. 소인 한 사람이 전체 조직에 균열을 가져온다. “그 정도는 봐줘야지, 뭐 별일이 있겠어?”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때가 이미 늦었다. 일의 성패가 사소한 데서 갈린다는 ‘물경소사(勿輕小事)’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