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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ning: mysqli_fetch_array() expects parameter 1 to be mysqli_result, null given in /opt/apache/htdocs/dreamlib/book/book_view.php on line 8 꿈꾸는도서관 :: Dreaming Library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본문 383쪽)
저자 김웅은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래 18년간 검사 일을 해왔다. 그런데 굳이 스스로를 '생활형 검사'라고 지칭한다. 검사란 이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대목이다. 그저 직업으로서 밥벌이하며 살아가려고 고시 공부해 검사가 됐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겹도록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거기서 검사는 보통 '거악의 근원'이거나 반대로 불의를 일거에 해소하는 '정의로운' 존재로 설정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극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검사들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드라마와 달리 검찰도 일반 회사와 거의 같고, 그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보통의 직장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각광을 챙겨 정치에 입문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스스로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저자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인물 군상은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생활로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것이고, 검사들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으로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 검사에게서, 소위 잘나간다는 그 어떤 선배들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존경'라는 감정을 느끼며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첫 책 『검사내전』은 바로 그렇게 '생활형 검사'로 열심히 살아온 저자가 검찰 '안'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이자, 검사라는 '직업' 덕분에 알게 된 세상살이, 사람살이를 둘러싼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프롤로그 _ 나사못처럼 살아가겠다던 선배를 기억하며
추천사 _ 나는 어떤 물음, 어떤 눈빛을 가지고 살아가는가_ 김민섭
1. 사기 공화국 풍경
사기꾼은 목숨 걸고 뛴다
어쩌면 울버린, 초인적 능력을 지닌 그들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무전유죄, 약자들의 거리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 돌리기
국가대표 영민 씨의 슬픈 웃음
지옥이 된 수민 씨의 꿈
착한 사마리아인의 거짓말
2. 사람들, 이야기들
검찰이 보지 못한 그의 진심
이야기의 뒷면, 진짜 사연을 이해한다는 것
그들이 고소 왕이 된 까닭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3. 검사의 사생활
당청꼴찌 '또라이' 검사의 어느 오후
차장은 잘 몰랐겠지만 검사는 개가 아니라서
검사 생활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과 다르다
'컬러학습대백과'가 가장 큰 자양분이 되었다면?
귀인의 기억,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4. 법의 본질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
엄정함을 잃은 법은 지도적 기제가 될 수 없다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들에게는 재판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한다
에필로그 _ 아침을 여는 청소부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1970년 전라남도 여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검 진주지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으며,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 시절을 보냈다. 이후 광주지검 해남지청장과 법무부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장을 거쳐, 현재는 첫 경력을 시작한 인천지검에서 자신과는 평생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한 것처럼 검찰에서의 '직장생활'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검사로서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덧붙인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는 조직 문화 덕분이었다. 그에게 검사라는 직분은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거악의 근원도, 불의를 일거에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도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그저 '나사못'처럼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생활인으로서 검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첫 책이 세상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이유다.
1970년 전라남도 여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검 진주지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으며,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 시절을 보냈다. 이후 광주지검 해남지청장과 법무부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장을 거쳐, 현재는 첫 경력을 시작한 인천지검에서 자신과는 평생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한 것처럼 검찰에서의 '직장생활'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검사로서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덧붙인다. 일반인들의 생…
당청꼴찌 '또라이' 검사
그 남자의 직장생활
흔히들 '검사' 하면 권력 지향적이고 야망에 가득 찬 사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소위 있는 집 자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검사만 되면 잘나가는 집안과 결혼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 김웅은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됐단다. 어려서부터 검사를 꿈꿔본 적 단 한 번도 없었고 엉겁결에 검사가 됐다는 것이다. 행간을 읽어보자면, 어떤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할까 생각하다가 그저 직업으로서 검사가 되기로 선택하고 고시 공부를 했다는 얘기다. 무딘 각오조차 없이 시작해서일까? 저자의 초임 검사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각종 사건 처리 통계가 좋지 않아 '당청꼴찌', 그러니까 '우리 청에서 꼴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검찰 조직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폭탄주' 마시는 일도 너무 힘들어했다. 덕분에 조직에서 눈총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초임 시절 날 가장 괴롭힌 것은 당청꼴찌라는 평가나 폭우처럼 쏟아지는 업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술과 회식이었다. (…) 얼마나 폭탄주가 싫었던지, 회식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당직을 서기도 했다. 내가 검사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부장은 회식 때 폭탄주를 돌리다가 내 순서가 되면 왜 아직도 사표를 쓰지 않고 조직에 남아 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폭탄주는 검사만 마셔야 한다면서 나를 건너뛰고 다른 검사에게 폭탄주를 넘기기도 했다. _ 본문 238쪽
그런 까닭에 저자 스스로 자기 신세가 '토방에 사는 생쥐 꼴'이었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어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직업적 야망이 없어서인지, 그는 상대가 검사장이든 차장검사든 가리지 않고 '욱' 하는 성미에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또라이'였다. 예를 들어 그는 어느 봄날, 검사장이 굳이 자기 고향에서 체육행사를 연 것을 두고 비꼬다가 행사장에서 쫓겨난다.
"다만, 기왕 이런 행사를 할 거면 우리 관할 지역에서 개최해 갈비탕 한 그릇이라도 팔아줬으면 불황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이 좋아했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 벌써 20년이 되어가지만 난 그때 검사장이 외쳤던 말을 기억한다. "이래서 검사들은 안 돼. 여기는 대한민국 아니야." (…) 선배들이 나에게 얼른 나가라고 했고 (…) 서커스 난장을 벗어나는데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더라. 사람들의 눈빛만으로 나는 그들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모지리', '부적응자', 대강 그런 단어들이 생생하게 들렸으니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_ 본문 234~235쪽
저자는 자신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냉소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은 제대로 가르치려는 것일 뿐이라는 미명하에 간부들이 벌이는 변덕스럽고 무지몽매한 행태에 불편함을 내비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조직의 단합'이라는 이름 아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평소처럼 밤늦게 야근을 하고 있는데 차장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장검사가 법원 판사들과 회식을 한 모양인데, 2차로 간 술집에서 흥이 과했던지 (…) 그 자리에서 각자의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내기한 것이다. 부르기만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 그것도 아키타나 진돗개, 허스키처럼 충성심 강한 개를 기르면 되는데 왜 그런 짓으로 귀한 시간을 소비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 각 부의 총무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뒤 나는 계속 사무실에 남아 일을 했다. 차장이 나에게 나오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고, 또 차장은 잘 몰랐겠지만 검사는 개가 아니다. _ 본문 238~239쪽
결국 내기에서 진 차장검사가 다음 날 부장검사들을 불러 화룰 냈고, 저자는 아침부터 부장에게 불려가 욕을 먹는다. 부장이 충무공 이순신을 거론하며 조직의 단합을 운운하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 주나요?"(본문 240쪽) 덕분에 두고두고 '또라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그래도 그는 '검사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일반인의 막연한 선입견과 달리 그 당시 검찰의 문화가 유연했다'는 데서 찾는다. 의견 대립이 있어도 평검사의 의견을 함부로 배척하지 못했고 검사들도 자신의 명예와 기개를 위해 직을 걸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일면 조직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검사라는 직분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비록 특별한 소명의식이나 야망은 없었지만, 유연한 조직 문화 덕분에 '나 같은 놈도 검찰에 빌붙어 있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검사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만나고 사건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은 단지 법을 집행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세상을 좀 더 깊이 알아 나가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