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골 소년의 풋풋한 성장기!
산골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이문일의 장편소설『청호반새』. 작가 김유정의 고향인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이문일은 김유정의 문학계보를 이어받아, 자신의 마을을 배경으로 어느 산골 소년의 성장을 서정적으로 그려내었다. 산골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그 옛날 시골에서 겪었을 법한 풋풋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향토성 짙은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은 소년과 소녀의 감정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서정적으로 그려내며,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놓는다. 산을 벗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소년의 마을에 서울 소녀 순아가 찾아오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며 졸졸 쫓아다니는 순아를 귀찮아하면서도 심하게 떼어놓지 못하는데….
\'청호반새\'는 다른 이름으로 파랑새라고 불리는 새이다. 여기서 청호반새는 시골의 순수성, 혹은 성장해가는 산골 소년의 어린 시절을 의미한다. 본문에 표시되어 있는 미주를 따라 뒤편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는 것도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이다. 작가는 본문과 다른 산골 소년의 에피소드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미주에 담았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통해 시골에서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책속으로...>
춘천 근방에서 가장 높은 원창고개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저녁을 먹고 바깥마당에서 별을 관찰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순아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드기 같은 순아의 감시에서 벗어나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밤뿐이었다. 순아는 이런 것을 알고 있을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내 가슴에 들어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pp.163, 164)
순아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벌떡 일어나 마당가로 걸음을 옮겼다. 흙도배를 하느라고 산기슭 진흙을 파낸 곳에는 현자와 나만이 알고 있는 청호반새 집이 있었다. 진흙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서 사는 청호반새였다. 그 앞에서 훌쩍훌쩍 울던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동안 보이지 않던 청호반새가 구멍 안에서 나오더니 서울 하늘 쪽으로 후르르 날아가는 것이었다. (pp.168, 169)
이문일(李文一)
1994년 예술세계 신인상
2001년 장편소설 『애마산』 출간
2002년 장편소설 『안개구름 낀 도시』 출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뇌게 하는 어느 산골 소년의 이야기
요즘의 아이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유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추수가 끝난 넓은 밭에서 뛰노는 대신 PC방 같은 곳에 빼곡히 앉아 오락을 하고, 감자나 고구마를 간식으로 삼는 대신 슈퍼에 가득한 과자류를 먹는다. 이러한 아이들의 일상을 비집고 향토적인 옛날의 유년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책이 있다. 소설 『청호반새』는 산골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그 옛날 시골에서 겪을 법한 풋풋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소설가 이문일의 고향은 춘천의 실레마을로, 일찍이 『봄봄』 같은 향토적 색체로 유명한 작품을 남긴 김유정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김유정 이후 실레마을에서는 몇 십 년 만에 나타난 작가가 이문일이다. 김유정이 자신의 마을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의 서정적 정취를 그려냈듯이 이문일 역시 김유정의 문체를 이어받아 자신의 마을 속에서의 소년의 성장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소년은 산속에서 나물을 직접 뜯고, 뱀과 말벌을 무기로 삼고, 밭을 매며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일찍이 체득한 인물이다. 이렇게 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소년의 마을에 서울에서 살던 소녀 순아가 찾아오며 이변이 일어난다.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며 졸졸 쫓아다니는 순아를 산골 소년은 귀찮아하면서도 그의 순수함으로 인해 심하게 떼어놓지도 못한다. 이러한 서울에서 온 소녀라는 것을 상정해 놓은 모습은 먼 옛날의 시골이 아니라 서울, 현재의 도시와 함께 어딘가에 있을 듯한 시골의 느낌을 준다. 이러한 느낌은 마을을 떠나 도시로 떠났던 박수무당의 딸 현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금 시골로 돌아온 현자는 예전의 시골 소녀가 아니었다. 도시로 인해 타락했으면서도 이제는 도시에서밖에 살 수 없게 된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결국 현자는 자신을 찾아온 깡패들과 함께 도시로 다시 떠나게 된다.
소설은 호젓한 산골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잡아낸다. 가장 뚜렷이 보이는 성장은 산골 소년이 학교에서 1등을 하게 되는 모습이다. 이는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살려고만 하던 소년이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려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순아의 산골 소년에 대한 감정의 성장도 보인다. 괴롭히는 모습 역시 소년에 대한 애정의 모습이지만, 순아는 점차 괴롭힘만이 아닌 다른 표현을 보이며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렇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순아의 감정만은 결국 알아채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을 그리며 그래도 사람들에게 남는 순진함, 순수함을 보여준다.
본문에 표시되어 있는 미주를 따라 책 뒤편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작가는 본문과는 다른 산골 소년의 에피소드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미주에 적어놓았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읽는 이들은 좀 더 다양한 시골에서의 삶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청호반새는 다른 이름으로 파랑새라고 불리는 새이다. 파랑새는 오래 전부터 희망을 상징하는 새로 여겨져 왔다. 어린 시절 읽은 『파랑새를 찾아서』라는 동화의 영향도 클 것이다. 이러한 파랑새가 이 소설 속에서는 몇 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 현자가 떠나감과 동시에 서울 하늘 쪽으로 날아간다. 여기에서 읽는 이들은 청호반새에서 많은 상징성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도시에 물들어버린 현자처럼 사라져버린 시골의 순수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성장해가는 산골 소년의 어리던 시절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을 청호반새에 담아 서울을 향해 날려 보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옛날의 서정적인 감성을 던져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