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이 고난의 연속인 고등학생 정승리. 집에서는 포악한 아버지가, 학교에서는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불독 선생과 끝없이 승리를 갈구는 친구 ‘개새’, 그리고 그에 말없이 동조하는 반 친구들이 있다. 그런 현실에 ‘사라져 버리고 싶은’ 승리는 어느 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코로나 바이러스 후유증(PCM)으로 신기한 증상이 발현된다. PCM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겪게 되고,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욕망을 반영한 몸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오늘도 오직 ‘정신 승리’로 하루를 버텨내는 이들에게 찾아 온 선물 같은 기적, 정신을 승리하게 만드는 말과 이야기, 책의 힘이 모여 기적 같은 오늘을 만들어 내는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 2024 상반기 청소년 문학 베스트셀러 《6교시 인성 영역》의 저자, 김송은의 두 번째 청소년 소설.
정신 승리가 필요하다, 이 고난 가득한 고등학생의 일상에서는
주인공 정승리의 어머니는 태국인이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어머니 직장의 사장님, 동네 아주머니들 모두 어머니를 대놓고 무시하고, 의심한다. 승리 역시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편하지 않다. 말을 더듬고, 소극적인 성격인 승리를 가만 두지 않고 문학 선생님 ‘불독’과 ‘개새’를 비롯한 나쁜 친구들은 수시로 그를 무시하고, 멸시한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한창 눈이 밝아지고 예민해지는 사춘기 시절의 승리에게, 그리고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는 승리에게 그런 세상을 사는 건 고역이다.
하지만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승리가 마음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분노와 억울함을 해소할 방법은 없다. 그저 저주 노트에 저주 받아 마땅한 이들의 이름을 빨간 색으로 수십 번 써 넣어 화풀이를 하는 것 외에는. 그러던 어느 날 승리에게 기적이 찾아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후유증은 오히려 좋아
지난 수년 간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승리는 감염된다. 죽도록 앓고 난 승리에게 어느 날, 기적이 찾아온다. 자기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이들 앞에서 승리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 둘 병원을 찾아 온 이들에게 밝혀진 ‘코로나 바이러스 후유증’, 일명 PCM이었다. 증상은 앓는 이의 욕망을 정확히 반영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밝은 시력을, 추위를 심하게 타는 누군가에게는 추위를 극복할 몸을, 돈이 없어 전력이 끊긴 집에서 떨고 있던 누군가에게는 전류를 제공하는 기적의 손을 가져다준다.
도망갈 곳도 없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승리에게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신기한 몸을 가져다주었다. 소설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이 흥미로운 판타지적 요소는 소설 내내 등장하는 결핍과 우울한 환경 속에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희망을 갖게 한다.
글과 말의 힘, 그리고 사람의 힘은 사람을 살린다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던 승리는 사람을 피해 가장 지원자가 없을 거라고 짐작한 봉사 동아리를 일부러 선택한다. 그곳에서 만난 ‘하마’라는 별명을 가진 울보 소년과 함께 한 괴팍한 노인, 유 선생의 집에 방문하여 주기적으로 노인을 돕게 된다. 노안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유 선생은 거대한 주택을 책으로 채워 넣고 싶어 한다. 그녀를 도와 책을 정리해서 서가를 만들어 가는 승리는 말더듬이 상태로 노력하며 유 선생에게 책을 읽어 주고, 그런 과정에서 절망 속에서 자신을 끄집어내어 사람을 살리는 말과 글, 책의 힘을 깨닫게 된다.
덩치가 산만 한 울보, ‘하마’ 소년은 유 선생의 지시로 강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PCM을 겪게 되고,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유 선생도 PCM을 겪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은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기 위한 ‘정신 승리’를 진정한 정신적 승리로 이끌어 희망의 세계로 나아간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신박한 소재의 판타지적 묘미와 삶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독서의 쓸모가 녹진하게 어우러져 읽는 맛이 살아 있는 새로운 성장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