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의 연필, 물병, 브로콜리 같은 게 되어 버렸다
엄마가 아무리 많은 걸 잊어버려도
여전히 엄마는 엄마다
모든 기억이 사라져도…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기억의 조각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이 책의 특징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현실로부터 구해 내고 싶은 ‘기억’의 조각들
《기억의 조각들》은 평범한 가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반갑지 않은 병, 알츠하이머로 인해 평화롭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하는 엄마가 기억을 잃어 가고 있다. 캐시는 고작 열두 살일 뿐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진단 받았지만 진행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엄마는 연필의 쓰임은 알지만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게 되었고, 멍하니 텔레비전만 쳐다보는 나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결국엔, 딸 캐시의 이름조차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아름답지 않니? 사막 말이야.”
‘아니. 대체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언제는 내 이름이 제일 아름답다면서? 심지어 내 이름은 엄마가 지은 거잖아. 근데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있어?’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엄마도 지금 엄마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야만 했다. _14쪽에서
아직 어린 캐시에게는 그 충격이 무척이나 크다. 캐시라는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느냐며 말해 주던 엄마가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가족을 깊이 아끼고 딸을 사랑하던 엄마였지만 함께 산책하고 등산을 가고 노래 부르던 그때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급기야 딸이 그려 놓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도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캐시는 곧바로 큰 결단을 내린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를 함께 실행해 보기로 한 것.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캐시는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기’라는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과 가까운 아쿠아틱 파크를 검색한다. 어릴 적 수영 선수였던 엄마이기에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엄마의 머릿속은 지워지고 있어도 몸이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바다는 엄마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엄마가 아프기 전 캐시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하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현실을 비관하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린다면 결국 남는 건 무엇이 될까? 함께했던 그때를 끝내 기억해 내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준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기억의 조각들》은 열두 살 캐시의 마음을 오롯이 보여 주며,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성심껏 응원한다. 캐시의 목소리에는 분명 힘이 있다. 때로 인내가 필요할 때에도 그 심지가 단단하다.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모습에 마침내 감탄하게 된다. 이 작품은 누구도 원치 않은 상황이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감’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며,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과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아이의 눈으로 이야기하는 특별한 성장 소설
엄마가 아프기 전만 해도, 캐시는 베일리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주말이면 함께 축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쏘다니곤 했다. 엄마가 점점 기억을 잃어 가면서 캐시가 담을 쌓을 때에도 베일리는 변함없이 캐시를 찾았지만, 연락을 받지 않고 피한 건 캐시였다.
미안하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캐시는 베일리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답을 알려 주는 것만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 여긴다. 그렇게 서툰 방법 때문에 오해가 더욱 쌓이기 시작할 때쯤, 캐시는 엄마의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단 한 번의 ‘용기’를 낸다. 캐시가 내민 손을 기다렸다는 듯 잡아 준 베일리는 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우여곡절 끝에 아쿠아틱 파크를 예약하고 무사히 엄마와 여정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베일리의 순수한 도움 덕분이다.
“할머니는 너희 아빠한테 바로 이야기하실걸. 네 걱정을 많이 하시니까. 근데…….”
베일리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우리 언니는 어때?”
내가 무슨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콩 요리를 한 그릇 가득 퍼 온 소니아 언니가 소파에 몸을 푹 던졌다.
“지금 내 이야기 하고 있었지?”
“캐시가 언니의 도움이 필요하대. 캐시, 언니한테 얼른 말해.” _137쪽에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사실 캐시 곁에는 힘을 낼 수 있도록 이토록 지지해 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학과 그림을 좋아하는 캐시를 끊임없이 독려해 주는 담임 선생님, 늘 따뜻한 요리로 베일리의 친구 캐시를 반겨 주는 로레나 할머니, 엄마가 돌고래와 수영할 수 있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소니아 언니, 그리고 아픈 엄마를 돌보면서 캐시의 상황도 알아주는 콜린스 아주머니까지. 가깝기에 소홀히 했던 관계가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을 겪으며 더욱 돈독해지고 회복되는 경험을 한다.
《기억의 조각들》에는 독특한 구성이 숨어 있다. 전반적으로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과거가 중간중간 소개된다. 그 과거를 통해 현시점을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앞이 깜깜한 현실이라 자칫 이야기가 신파로 흐를 수 있지만, 한때 행복했던 순간을 읽으며 독자들은 한편으로 안도한다. 마치 지금을 살아가는 힘은 그때 그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현재가 마냥 힘들지만은 않은 것이다.
마침내 엄마의 버킷 리스트를 이루고 돌아온 캐시는 이제 어떤 선택을 또 하게 될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책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