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사물을 꿰뚫는 예리한 시어로 일상을 되짚어보는 동시들
동심이 가득한 세계로 어린이들을 초대해 온 청개구리 출판사의 동시집 시리즈 <시 읽는 어린이> 117번째 동시집 『봄비는 모른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1년 『오늘의 동시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우남희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이다.
우남희 시인의 동시는 대체로 짧고 함축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최근 짧은 동시가 유행하고 있어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짧은 시에도 격이 있고 시적 사유를 머금었다가 내뿜는 울림의 정도가 천차만별이기에 저마다의 시적 성취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종헌 평론가가 지적하듯이 “짧은 동시는 시적 대상의 사전적 의미를 비틀면서 웃음을 자아내거나 대상의 외적 특성을 간결하게 묘사하는 정도에 그친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남희 시인의 동시는 그러한 약점을 뛰어넘는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정한 시적 성취와 재미를 지니고 있다.
설레게 할 수 있을까?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처음이라
오는 내내
고민했을 거야
--「첫눈」
얼핏 보면 아주 평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짧고 쉬운 작품이다. 첫눈이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내린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시를 곰곰 읽다 보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제목이 ‘첫눈’인데 여기서는 첫눈이 내리는 풍경이나 첫눈을 바라보는 심상을 노래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첫눈을 하나의 객체이자 대상으로서 거리를 두기보다는 주체의 시선을 객체화함으로써 타자의 입장과 감정을 유추해 재해석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첫눈’이라는 언어유희가 적절히 활용된다. ‘첫’눈이니까 처음의 설렘과 망설임이 함께 했으리라는 전제하에서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고 공감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처음’이라는 말은 아이들에게는 아주 친숙할 수밖에 없는 단어다. 아이들은 모든 게 새롭고 처음 겪는 일투성이일 것이다. 처음이라 설레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아이들의 심리가 ‘첫눈’의 심리와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첫’이라는 관형사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의 내면을 포착해 큰 울림을 주는 것이 우남희 동시의 특색이라 하겠다.
이번 동시집에는 이러한 시적 성취를 보이는 작품이 다수 포진해 있다. 표제작인 「봄비는 모른다」, 「눈사람」처럼 타자의 입장에서 관계의 의미를 재조명하기도 하고 「눈 온 아침」, 「담쟁이」2부작,「열쇠」, 「뱃길」, 「휘청」 등의 작품처럼 사물의 일반적 특징에 빗대어 자연의 이치나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담벼락은 정전 중
얽히고 설킨 전선줄
그대로 둔 채
내부공사 들어갑니다
따뜻한 봄날
다시 뵙겠습니다.
--「담쟁이」
「담쟁이」 2부작 중 한 편이다. 겨울이 되어 담벼락에 실핏줄처럼 앙상하게 말라붙은 담쟁이 줄기를 전선줄로 묘사했다. 이미지가 확 떠오를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이 난다. 이를 내부공사 들어가 잠정 휴업 중이라고 선언한다. 담쟁이의 생태와 계절의 순환을 인간사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절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봄이 오면 담쟁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까. 또 한 편의 동시 「담쟁이」에서는 “메마른 몸으로/차가운 벽을 끌어안고/백일기도하”는 담쟁이로 시작해 “봄이 되자/그 기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곧 “생기가 돌면서/파릇파릇/벽을 살려냈다”고 담쟁이의 성공적인 귀환을 알린다. 이처럼 우남희 시인의 시에서 자연과 인간세상은 서로를 은유하며 한몸을 이루고 있다. 그 비유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이 느껴지고 언어를 부리는 묘미가 시 읽는 재미를 북돋워 준다.
매미 소리
제트기 소리
채소 파는 확성기 소리
놀이터에서 노는
내 동생 목소리
그 중에
내 동생 목소리가
제일 잘 들린다
--「동생이라고」
가족 간의 친밀도를 그린 동시다.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다 다르고 제각각이겠지만 가족만큼은 누구에게나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그 소중함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익숙하고 친밀하고 마음이 통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시인은 아무리 소란하고 번잡스럽고 혼란스러워도 “내 동생 목소리가/제일 잘 들린다”고, 그래서 가족이라는 것을 단순명쾌하고 군더더기 없이 일갈해 놓았다.
이외에도 가족간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하는 「한 턱 쏘세요」, 사교육 현실을 풍자적으로 빗대면서 가족간의 서운함을 토로하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시원한 말」, 「누가 하면 어때?」 등처럼 아이들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도 아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줄 만하다.
이 동시집을 통해 어린이들이 동시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느끼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자연 현상이나 사물의 본질을 쉽고 간명하게 이해할 뿐 아니라 언어적 표현 방법에도 쉽게 익숙해지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