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붉은 애무

[서평] 붉은 애무를 읽고ㅡ사랑도 보험이 되나요?/zixia

이야기는 두 개의 사건을 날줄과 씨줄로 하여 포개지고 교차하며 전개된다. 바로「잔ㅡ브누아사건」과 「펠릭스ㅡ콜랭사건」이다.

전자는 소설에서 문학적 장치로써 기능하는 부차적인 사건사고인데, 갈랑드 가의 아파트화재와 연관된 한 모자母子의 실종사건으로 시작한다. 이들 모자의 이름을 따서 잔ㅡ브누아사건이라고 명명해본다. 경찰은 화재의 배후로 세입자인 그들을 찾느라 수배령을 내리지만 모자는 결국 온몸에 찔린 상흔으로 만신창이가 된 주검으로 발견된다. 누가 왜 이들 모자를 죽였을까? 사건은 단순한 행방불명에서 살인사건으로 확대되고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주인공 펠릭스 마레스코는 보험회사직원으로 마침 화재건물의 피해상황을 책임지고 조사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는 잔ㅡ브누아사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마치 뭔가 알아낸 탐정인양 이들 모자를 칼로 흉해한 범인이 누구일지 나름대로 추론해본다. 「찌른 건 아이였을까, 엄마였을까,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종국엔 모자 주검의 상처를 「고슴도치」(아이엄마 잔 델벡의 어깨엔 고슴도치 문신이 새겨져 있다)의 소행이라고 결론짓는다. 즉 진범은 고슴도치라는 말이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힌트처럼 들리는데, 그럼 무엇에 대한, 아니 어떤 진실에 관한 제시어일까?

이 사건과 유비되는 것이 소설의 주요사건인 「펠릭스ㅡ콜랭사건」인데, 시간상으론 잔ㅡ브누아사건보다 먼저 일어났다. 주인공의 아들 콜랭이 엄마 마리와 함께 유치원을 나서던 중 대로에서 뺑소니차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범인은 결국 화자의 진술로 밝혀진다. 사실 범인이 누군지 미리 알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재미가 결코 반감되진 않는다. 오히려 서너배 증폭되니 책을 아직 안 읽은 독자는 안심해도 좋다. 범인에 대한 힌트는 또다시 고슴도치다. 고슴도치란 상징은 펠릭스ㅡ콜랭사건의 진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고슴도치는 보호자의 역할과 관계된 왜곡된 사랑의 상징이다. 작가가 말한「극에 달한 감정, 광기에 이른 사랑」을 말한다. 말 그대로 펠릭스의 콜랭에 대한 사랑은 고슴도치의 슬픈 사랑이다. 사랑이 과하면 과할수록, 즉 접근하면 할수록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남기고 자신에겐 더 큰 후회를 남기는 그런 쓰디쓴 사랑이다. 고슴도치는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상을 말한다. 한편으론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한편으론 돌맹이처럼 매몰찬 그런 모순된 마음을 가진 인간말이다.

고슴도치는 「실추한 어머니와 두께 없는 아버지」의 상징으로 주인공이 바로 살아 숨쉬는 표본이다. 펠릭스는 모정과 부정 양자에 모두 굶주려있다. 오늘날은 물질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 그런데 사랑이란 비물질적인 공간에선 오히려 모두가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 펠릭스는 사실상 칭얼거리며 젖달라는 아이처럼 한번도 받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상상하고, 덜 받았던 어머니의 더많은 보살핌을 갈구한다.

실종된 브누아와 잔처럼, 펠릭스와 그의 어머니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홀몸이 된 여자의 아들에게는 아이가 될 권리가 없다」고 고백한다. 아이시절을 상실한 애늙은이.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는 뒤늦게야 아이시절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아들 콜랭의 탄생이다. 일례로 잠수함놀이에 열중한 노인과의 만남에서 펠릭스는 상실했던 부정을 다시금 느끼고,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자기 이름이 콜랭이라고 노인에게 소개한다. 상실했던 걸 잠시나마 되찾은 기념의 의식인양 말이다.

고슴도치는 또 잔의 어깨문신을 통해서 그녀의 아파트화재의 원인인 촛불과도 연계된다. 펠릭스의 전도된 자식사랑은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촛불의 불꽃과도 같다. 자기자신을 그리고 아버지란 배역을 희생하며 완성해 나가는 그런 사랑이다. 문제는 부작용으로 화재가 날 수 있다. 자칫하면 「불의 애무」로 단 한 순간에 모든 게 소실된다.

펠릭스는 엄마의 역할이란 보험을 들어 콜랭의 사랑이란 배상금을 타려고 했다. 다른 일반보험들처럼 엄마 노릇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고객이 비록 자신의 세 살배기 아들이지만 녀석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사랑은 보험이 안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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