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붉은 애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약간 에로틱한 면이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화려한 표지와 함께 약간의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전혀 애로틱하지 않은 책이다. 그렇다고 제목을 엉뚱하게 붙인 것은 아니다. 애무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서 우리들이 느끼는 오늘날의 감성들이 너무 편협하다는 것을 깨닿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가정이라고 하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 이 책은 바로 그런 것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물론 지루한 논증을 시시콜콜 늘어놓는 책은 아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군더더기 하나없이 완벽하게 전개되는 깔끔한 내용. 절제된 언어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제기하는 주제에 깊이 빠져드는데 어려움을 없애주는 역활을 한다.
처음에는 무슨 탐정소설처럼 시작되는 이 책은 결국은 상처입은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에 내가 우연히 읽게되는 책들은 왜 모두 이렇게 아픈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붉은애무라는 책의 이름과 표지에서 전혀 아픔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는데도 말이다. 아마 요즘의 어려운 시류에 맞는 책들이 출간되어 나오다보니 내가 마주치는 책들마다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시리고, 또 그렇게 삶이란 것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천작하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가보다.
이 책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지 않고서는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쓸수가 없다. 또 줄거리를 다 소개하고 나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가능성이 있다. 상당히 눈치가 빠른 편인 나도 이 책의 절반을 훨씬 넘긴 다음에야 비로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요즘의 가벼운 장르소설들이 택하는 반전의 묘미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야기의 전개가 그렇게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성공. 명예. 편안한 삶. 그런 것이 삶의 의미일까. 어차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일까. 아니면 삶에는 지고지순한 해답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찾아가는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아니면 삶에는 선험적인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어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고, 힘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서 더 나은 스코어를 받는 일종의 선행게임같은 것일까.
이 책은 삶이란 사랑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이 사랑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은 상실이다. 그렇다. 이 책은 사랑의 상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사랑의 상실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또 다시 사랑의 상실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사람의 생을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과연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의 탁월한 이야기와 삶의 대한 식견에 깊이 동의를 한다. 좋은 독서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