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중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우면서 참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이 기원전 2333년으로 나와 있고, 우리나라에 청동기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10세기라고 배웠다. 그러므로 고조선은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는 설명에 대치된다. 사료와 유물 부족으로 그 궁금증은 오랫동안 풀 수 없었다.
그런데 2007년 국사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우리나라에 청동기가 도입된 시기가 기원전 20세기에서 기원전 15세기로 1000년 가까이 빨라졌다고 한다. 이는 그간 발굴된 유물을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하여 얻게 된 과학적인 성과라고도 하고, 어쩌면 고조선의 건국 시기에 맞추고자 끼워 맞춘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처럼 역사는 움직일 수 있다. 지도가 없이 먼 길을 가다 보면, 가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처음에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길을 잘못 제시해 두면 그 뒷사람들은 그 잘못된 길을 따라 점점 더 멀리,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되돌아서 진정한 방향으로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 버린 이런 일이 일본 식민지배 시대에 우리 국사 해석, 특히 고대사 분야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서 다져진 넓은 길 취급을 받으며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고발하는 내용이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2008, 이희진 지음, 소나무 펴냄)이다. 한국 고대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우리나라 국사학계에 식민사학이 얼마나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는지 통감하며 그 위험성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는 식민사학 왜 문제인가?, 한국 고대사 학계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논리, 깡패 논리로 심어지는 식민사학의 세 부분에서 식민사학이 만들어지고 성장하여 정착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서 미래의 교훈을 찾는 역사학의 본분은, 현재를 위하여 과거를 조작하는 일본의 황국사관으로 오염되었다. '만세일계의 황실을 받들어 온 일본 민족의 역사를 구성하고 황실의 존엄과 국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쓰여진 <일본서기>, 그 황국사관에서 파생된 식민사관이 일본 식민지 시절에 우리나라를 정복했다. 저자는 식민사관을 '한반도 지배를 위해 조작된 일본 역사학계의 논리를 근거도 없이, 또는 억지 근거를 만들어 좇아가는 것'으로 규정했고, 현재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주류인 서울대학교 출신의 상당수가 식민사학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2부에서 그 근거를 조목조목 대고 있다.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신덕황후도 그처럼 조작된 일본 역사의 증거로 등장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맨 처음의 청동기 도입 시기 수정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과 유물의 발견에 따라 바로잡힐 수 있는 역사가, 해방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생살부를 든 지도 교수의 영향력에서 어렵게 어렵게 벗어난다손 치더라도,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 심사에서 배제되기 일쑤이고, 야합과 비호, 사리사욕과 편파 판정 등으로 인해 주류와 다른 의견은 발을 붙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와 같은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는 저자는, 공익제보자와 같은 심정으로 적나라하게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내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황우석 사태가 떠올랐다. 국가의 자존심이 걸렸고 신지식인으로까지 뽑혀서 국고 지원과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에, 그는 실패로 끝난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대신 끝까지 부인하고 숨기고 조작했다. 이 책에서 다룬 우리나라 식민사학자 주류들도 어쩌면 똑같지 않을까?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가속이 붙은 차에 타고 있는 그런 입장 말이다.
그러나 그들만의 영달을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자긍심을 양보할 수는 없다. 식민사학에 대한 반발로 지나친 국수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탄스러운 현실을 똑바로 짚어낸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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