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읽은 후...

시인 나희덕님은 한 산문에서 ‘고난주간’만이라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한 가지씩을 줄이거나 금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침묵을 실행에 옮긴 적이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삶이 침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를 실감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는 존 프란시스의 침묵과, 그로부터 비롯된 순례에 대한 책이다. 그의 침묵은 1971년 샌프란시스코灣의 대형 원유 유출 사고를 접한 뒤 그 사건에 자신도 무관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느낀 결과이다.

프란시스는 환경을 생각하는 한 사람의 행동이 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며 논쟁을 걸어온 세상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프란시스는 거지 성자라 불리는 페터 노이야르를 생각하게 한다. 페터 노이야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무소유에 바탕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독일의 수행자이다. 존 프란시스 역시 지인인 제리 터너의 죽음을 보며 삶의 유한함을 느끼고 순례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과 무관한 대형 원유 유출 사고에 책임을 느끼고 세계 평화와 환경 캠페인을 호소하는 지구 순례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그의 행동에 지인의 죽음보다 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 둘이 프란시스의 행동에 함께 작용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프란시스의 침묵은 뜻 밖에 그를 순례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프란시스는 자동차 운전을 포기 한 결과 전위음악 그룹의 매니저 자리를 잃는 등 결코 만만치 않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가 걷는 것을 본 어떤 사람들은 논쟁과 시비를 걸어왔고 프란시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회의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스물 일곱 번 째 생일을 맞아 J.R.R 톨킨이 <호빗>이란 책에서 자기 생일에 남에게 선물을 하는 것에 착안해 자신과 논쟁을 하거나 자신의 수다를 들어야 했던 친구들에게 침묵이라는 생일 선물을 하기로 결심한다. 침묵은, 그 누구보다도 과감한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저자가 내린 결단이다.

우리 모두는 걷기에 담긴 남다른 매력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저자는 걷는다는 일상적 행위 속에 영적이고 성스러운 감정이 싹트고 있다는 자각(53 페이지)을 하고 명상(70 페이지)을 하는가 하면 수행 같은 그림 그리기(67, 68 페이지)를 시작한다. 책의 곳곳에 실린 삽화는 禪畵 같기만 하다. 하지만 침묵의 동기는 가슴 아프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흑인이다. 흑인인 것이 싫어 자기 기만의 수단으로 택한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저자는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83 페이지) 하지만 침묵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한다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얼마간은 가벼워진다.

침묵하며 걷는 그를 이해 못할 까닭이 있는가? 저자는 “혼자만의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84 페이지)는 말을 한다.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글을 읽으며 때로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각자의 길’(108 페이지) 같은 단어는 한층 더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이 고속의 시대에 걷기는 명상의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명상이 된 걷기(168 페이지)를 실행한 저자는 “침묵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영성과 교감과 명상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172 페이지)

걷기 명상을 한 지 10년이 된 해의 생일을 맞은 날 그는 침묵을 깨고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171 페이지) 저자는 어느덧 37세의 나이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침묵은 도보로 세계 일주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결심을 현재 진행형이 되게 하며 습관이 아닌 선택에 의해 말을 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 10년 사이 저자는 환경학을 공부했고, 도보 순례를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환경보호와 세계 평화를 촉구하는 비영리 교육기구인 플래닛 워크도 설립했다.(162 페이지)

저자는 “혼자만의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84 페이지)고 말했지만 플래닛 워크를 설립해 환경과 평화를 위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저자가 택한 침묵의 걷기가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바위와 돌맹이의 촉감을 일일이 느끼”며 걸으며 그가 만난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산맥과 사막, 극지, 알래스카 등 그가 가 닿은 곳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가 만나거나 전해 들은 무수한 사람들 중 마치 내가 직접 듣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30년 가까이 동전 한 잎 지니지 않은 채 4만 km가 넘는 길을 도보 순례하며 평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진 피스 필그림(peace pilgrim) - 밀드레드 노먼이라는 본명을 가진 - 이란 여자분이다. 도보 순례 중 교통 사로로 목숨을 잃어(176 페이지)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는 聖者라 불렸던 여자분이다. 1953년 46세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모든 권리와 재산을 포기하고 순례의 길에 나선 피스 필그림은 교통사고에 의한 죽음을 ‘더 자유로운 삶으로의 복된 전환’이라 표현했다. (292 페이지) 저자는 필그림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매년 생일이면 침묵을 계속 해야 하는지를 놓고 자문(自問)하던 저자는 지구의 날을 택해 말을 하기로 결정한다.(398 페이지) UNEP(유엔 환경계획) 친선대사라는 정식 직함을 가진 그는 유일하게 “기름유출에 의한 천연자원 피해 산정법을 연구하고 있는” 희소성과 오랜 침묵과 도보 순례라는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성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미국 정부의 일을 맡게 된다.(430 페이지) 저자는 마침내(?) 걷기와 항해와 비행기를 비롯한 동력 운송 수단 이용을 병행하기로 결심한다.(445 페이지) 가족과 학문은 물론 공동체와 시민단체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한 결과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는 남극에도 한번 다녀 왔으며 마사 스미스와 결혼해 현재 두 아들과 살고 있다.(456 페이지) 치유의 여행 중인 그는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을 가장 우려하는 과학자이기도 하다. 걷기의 수행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책은 생각하지 못하게도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글을 다 읽은 지금 마치 오래 사귀었던 사람과 작별이라도 한 듯 허탈함마저 느껴진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는 지난 해 내가 읽은 <공정무역>이라는 책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분야가 다른 책이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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