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밀레니엄

내가 그동안 읽었던 추리소설이 뭐가 있었더라....생각해보니,
어릴적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거의 읽었고, 좀 더 커서는 포우에 푹 빠져있었던 기억이 났다. 한때는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을 즐기기도 했고 존 그리샴의 새소설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던 젊은 날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나도 추리소설 매니아로 불릴 자격이 있나 건방진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세계 3대 추리소설중 그 유명하다는
"Y의비극"과 "환상의 여인"도 아직 읽지 못한 내가 추리소설 매니아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서 읽은 추리소설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저자의 경이로운 철학적 신학적 지식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밤을 세워 읽으며 이 책 이후로 그 어떤 추리소설에도 감동받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었다.

전직 기자출신의 무명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은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사전정보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는 추리소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로 읽기 시작하였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충분히 즐기고 싶어서 책과 함께 보내온 출판사측의 친절한(?) 보도자료는 일부러 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추리소설이 반드시 갖추어야할 숨막히는 긴장과 서스펜스, 엄청난 반전은 없다. 사건의 해결과정을 따라가며 범인을 예측해 보는 즐거움도 없다.
하지만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책을 읽다가 밤을 세웠고, 집안일등의 소소한 이유로 잠시 책읽기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밀레니엄" 생각뿐이었다.
커다란 긴장감도 없이 가공할 만한 사건과 반전도 없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책에 빠져들게 하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한 가계의 추악한 역사와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줄거리의 큰 줄기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전직 기자와 천재소녀의 두 축을 중심으로한 사건의 전개, 두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배경과 인간 관계, 한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를 망라한 역사적인 배경까지 얼핏보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대하소설에 가까운 복잡한 플롯이 전체적으로 깔려있다.
처음에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여러 사건들과 중심사건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몰입했다면 어느정도 도입부의 복선을 알아채고 사건의 전개를 즐기기 시작했을 때는 저자의 독특한 전개 방식에 이미 빠져있었다.
그건 바로 추리소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느린 템포의 미학이었다.
한 발 다가서다가 다시 뒷걸음치듯 주변을 둘러보게 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여러가지 플롯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기쁨. 물론 이렇게 느린 템포의 전개를 참아낼 수 있는 아니, 즐길 수 있는 또 한가지의 매력은 바로 환상적인 리얼리즘에 있다.
마치 머릿속에서 필름이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배경과 인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나만의 캐스팅으로(스필버그보다는 워쇼스키가 더 나을 것 같은데..감독까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 버렸다. 이러한 리얼리즘을 위해서 작가가 심어놓은 모티브의 필연성과 치밀한 전개는 기본이다.
더불어 스웨덴의 역사, 경제,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선진국가의 모습과 모순을 살짝 들여다보게 된 것은 이 책이 주는 덤이다.

책은 일찍 읽었는데 휴가와 아이들 방학, 올림픽등으로 서평이 좀 늦어졌습니다.
감동이 식기 전에 좀 더 빨리 옮겼어야 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좀 아쉽네요.
좋은 책 한 편으로 여름이 참 행복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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