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서평]나는 전설이다-미국공포소설의 전설을 만나다

책을 펼쳐들며 무엇을 기대했었지?

<새벽의 저주>, <황혼에서 새벽까지>등의 영화가 보여준 영상들을 떠올렸었다.

좀비가 피를 찾아 사람을 공격하는 인류 멸망의 날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상상했던 나는,

보기좋게 한 방 먹고야 말았다.

가볍지도, 좀비를 재미로도 사용하지 않은 깊이 있는 철학적인 소설을 만난 것이다.



독특하고 걸죽하다. 그래서 책이 출간되고도 반세기가 넘었건만, 세인들의 입에 번번이 회자되는 것이리라.

통속적인 소설만을 읽던 내겐 모험과도 같았다.

마치 실재하는 공포와 마주하는 용기를 내는 것처럼,책을 읽는 그 단순하고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과업과도 같이 느껴졌었다.



내가 태어나 세 살이 될 무렵인 1976년, 그야말로 인류 멸망의 순간이 도래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태어나 이제 걸음마하고 기저귀를 떼었는데 흡혈귀가 되어야 한다니...

핵전쟁과 세균 전쟁으로 지구엔 대재앙이 닥치고, 유일한 인간으로 남은 네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힘들어한다. 아내를 향한 그의 애절한 그리움에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았다.



그가 처한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인간의 흔적을 찾을 길 없는 황량한 거리에서 점점 줄어드는 생필품을 구하고, 힘없이 잠들어있는 흡혈귀들을 죽이며 낮동안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밤이면 공격을 시작하는 흡혈귀 무리들로 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견뎌낸다. 죽은 흡혈귀와 반은 살아있는 흡혈귀.

정말 세상에 남은 인간은 네빌뿐인가? 읽는 내내 새로운 등장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인간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공포감이 극에 달한다.

네빌은 흡혈귀가 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전문서적을 찾고 실험을 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해보려 애를쓴다. 점점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신이 만든 환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도서관에 널린 수많은 책을 보며 화자가 던진 말,

"지구에 버려진 지성의 잔재들...이 수많은 책들 중에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책은 한 권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책 속엔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던 내 판단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이유있는 근거 제시로 보편적인 생각들을 뒤집는 반전의 묘미가 곳곳에 숨어있다.

제목이 담고있는 의미 또한 뛰어난 반전이었다는 것을 책을 덮으며 깨닫게 되었다.

좀비, 흡혈귀가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인물들인 것이고, 인간만이 실존적 존재라는 너무나 뚜렷한 사실이

네빌이라는 유일한 인간의 존재로 인해 전설이 된것이다.

전설이 실화가 되고 실화가 전설이 되는 기막힌 반전이었다.



또한,

"그가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단지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이 장면은 실로 놀라울뿐이다.

인간을 보는 작가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무엇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우리가 과연 구분할 수있을까?

결국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신 인류라 할 수 있는 존재들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의 요새를 정복한 새로운 미신은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이 그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장르소설 마니아가 되도록 한 결정적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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