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우선 문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을
뭔가 간단한 것을
뭔가 유용한 것을 그릴 것
그 다음엔 새장을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걸어 놓을 것
아무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여러 해가 걸려서
오기도 한다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무관한 것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나무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싱싱한 바람과
햇빛 또한 그릴 것
그리고는 새가 노래하기를 기다릴 것
혹 새가 노래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쁜 징조
그림이 잘못된 것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좋은 징조
당신이 싸인해도 좋다는 것
그러거든 당신은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아서
그림 한구석에 당신 이름을 쓰라.
---------------------------------------------------------------------------------------------
이런 게시판이 있었다니...
그냥 갈 수 없어서 좋아하는 詩와 시집 표지를 남기렵니다.
자끄 프레베르는 계산하기도 편하게 1900년 입춘인 2월 4일에 태어났네요.
희곡, 작사, 시나리오 등을 썼으며, 어린이, 새, 꽃을 주로 노래하는 시인이었으며,
어떤 단체보다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다가 1977년 4월 11일 눈을 감았답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일은 연락 두절된 제 20년지기 친구놈보다 정확히 71년 빠르고,
제삿날은 우리 마누라가 태어나기 사흘전이네요. ㅋㅋㅋ~
시인이 죽기 2년 전에 이 시집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니 참 오래된 시집인데
몇 번 판갈이 끝에 첨부된 사진처럼 장난스런 표정의 시인 얼굴이 폼 납니다.
이 한불 양면 시집의 15번째로 수록된 이 멋진 詩는 까탈스런 자녀나 학생을 가진 부모나 선생님들께
좋은 영감을 줄 것 같아요. 그 영감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