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명품인간



















제 목 :  명품인간


한창 나라 안이 떠들썩하다. 지독히도 열병에 들듯 머리가 지끈한 형국이다. 온통 이름에 매달리고 얽어져 몸이 모두 명품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몇 억 여자가 온통 나라를 시끄럽게 한다. 요즘 언론매체를 들여다보면 福不福, 아니면 명품이라는 도가니로 융해되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본다. 얼짱, 몸짱, 엉짱, 뭐 그런 등속에 사람들의 머리는 휑뎅그렁한 의식의 공백상태를 보이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누가 조장하였는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무슨 유명 지갑이나 핸드백이지 의류니 하는 것을 몸에 걸치면 아주 엣지(edge)있는 사람으로 돋보인다고 여긴다. 엄청난 착시와 착각현상이다. 지난 날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검정 고무신에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반대편 어깨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대각으로 책을 매고 다녔다. 그게 불과 35년 전의 얘기다. 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라고, 아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질척거리는 진흙을 밟으면 고무신이 벗겨지고, 우산이 없어 비료부대의 밑 안 터진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 머리만 내밀고, 양쪽 겨드랑이 부분도 둥그렇게 구멍을 내어 팔을 끼워 넣고 비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비오는 날 고무신을 신으면 그게 어디 신인가. 몇 발자국 가다 보면 벗겨지곤 하여 성가시고 짜증이 난다. 고무신은 뒤축이 다 딸아 찢어지고, 그걸 보고 어머니는 흰 실로 꿰매어 주신다. 그래도 며칠을 아니 한 일주일은 버틴다. 아마 근 한 달은 그렇게 신을 사 주실 때까지 버틴다. 실밥이 다 풀려도 그걸 내내 신고 다닌다. 종내에는 고무신이 옆도 터지고 아주 너덜너덜해지면 그제야 고무신을 사 주신다. 새 고무신을 사 오시는 날에는 얼마나 마음이 흡족한지 고무신을 초가집 방안에 들여놓고 댓돌에는 숫제 올려놓지도 않는다. 소꼴을 베러 가거나 뒷산을 극터듬어 올라갈 때에도 그 고무신을 신고 간다.



為濁富不若為清貧 以憂生不若以樂死(위탁부불약위청빈 이우생불약이락사),라고 했던가! 300여 년 전에 씌어진 『유몽영(幽夢影)』이라는 글에 보이는 대목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쌓은 것은 가난하되 깨끗이 사는 것만 못하고, 근심에 얽매여 사는 삶이란 즐겁게 살다 죽는 것만 못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몸치레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옛 선현(先賢)들의 말을 되 뇌이지 않아도 알아들을만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오히려 부를 자랑하고 명품을 좇고 지나친 몸치레에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게 우리네 어른이 아니던가?





지금의 세대와 예전의 세대는 그 세월이 흘러온 길이 다르다. 시대는 시대를 반영하는 게 문명을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하지만 인성(人性)이 내동댕이처지고 인륜이 바닥으로 가라않는 데서 문명발전을 찾을 수 없다. 지금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문명이라는 줄기의 가지에도 못 미치는 비인소배(非人少輩)들의 치룽구니(바보) 같은 헛되고 몰염치한 짓거리들이다.


도대체 이 나라의 인성교육은 아주 느자구(싹수)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명품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을 배우는 것보다 바른 마음과 틀거지를 지녀야 한다. 이로써 나라와 민족에게 이바지할 능력과 품성을 지녀야 한다. 이게 바로 명품인간이다. 겉치레와 입에 발린 사탕과 같은 거짓말로 세상을 우롱하는 것은 이 나라에 좀 벌레나 좀도둑 내지는 불한당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양학연구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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