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옹전 중에서


연암의 민옹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생각하여 옮겨 놓는다. 작은 도독보다는 큰 도둑을 생각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글이다. 앞서 있는 자들이 경계로 삼아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이


 "해서 지방에 황충(蝗蟲)이 생겨서, 관청에서 백성들더러 잡으라고 감독한답디다."


하고 말하자, 민영감이 물었다.


 "황충을 잡아서 무엇한다우?"


 "이 벌레는 누에보다도 작은데, 알록달록한 빛에 털이 돋혔지요. 이놈이 날면 명(螟)이 되고, 붙으면 모가 되어서 우리 곡식을 해치는데 거의 전멸시키지요. 그래서 잡아다가 땅속에 묻는답니다."


 민영감이 말했다.


 "이 따위 조그만 벌레를 가지고 걱정할 게 무어람. 내 보기엔 종로 네거리에 한길 가득히 오가는 것들이 모두 황충일뿐입니다. 키는 모두 일곱 자가 넘고, 머리는 검은 데다 눈은 빛나지요. 입은 주먹이 드나들 만큼 큰 데다 무슨 소린지 지껄여 대고, 구부정한 허리에 발굽이 서로 닿고 궁둥이가 잇달아 있습니다. 이놈들보다 더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 놈들이 없다우. 내가 그놈들을 잡고 싶은데, 큰 바가지가 없는 게 한스럽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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