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모든 것에 대하여
길었던 겨울만큼이나 을씨년 스러웠던 봄이었습니다.
이제 막 싱그러운 젊음이 채 펼쳐보이지도 못한채 저물어간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때아니게 흩날리던 눈꽃송이가 막 피어나던 여린 꽃송이를 덮어 얼어가듯이 우리들의
마음도 얼어붙었던 봄날들이었습니다.
죽음은 남의일이거나 혹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식과 아이들의 돌잔치를 쫓아 다디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이제 부쩍 많아진
부고소식에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 봄이었습니다.
유독 추웠던 겨울이 지나면 어르신들이 삶을 놓으시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추위는 고단한 우리네 삶처럼 치열한데 막상 벗어나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맘을 놓아...호시탐탐 곁을 엿보던 저승차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던게지요.
올봄 유독 죽음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죽기전에 해야할...몇가지 일들이며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하는 법이며..
하긴 죽음은 우리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업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통도 없이 스러지는 것이 나은지..
그래도 어수선했던 삶을 조금이라도 정리할 시간이라도 벌어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죽음과 마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것이 더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한번 쯤은 생각해 볼 시간이 된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혹 누구에겐가 하지 못한 말들과 청산 못한 일들이 있었다면
이것만큼은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다면..
준비없이 떠나야하는 먼길에 앞서 조금이나마 준비의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뭐 받을것도 줄것도 없이 소박했던것이 눈에 보이는 재산들이었다면
살면서 이웃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신세지고 갚아야 할 빚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용서가 가장 큰 복수라는 말처럼 사는 동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정리를 해야할 것도 같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이 용서와 화해라는걸..얼마전 읽은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사는 동안 그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용서라니요...그건 너무 쉽다고..그렇게 그사람들을 그죄를 놓아주기엔 내가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럽지만..인간으로서 절대 쉽지 않지만 죽기전에 용서하고 화해해야만..
갈 사람이 나이건 상대이건...남은 시간 평안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내가 목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미망에 갇혀 고통속에 빠져 지내야 한다는건
결국 족쇄이고 감옥이라는 걸 진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용서못하고 보낸 사람에게도 늦었지만 손을 내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이세상에 있지만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갑자기 제게 남은 시간들이 더 소중해지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 혹은 부처님께 기도해도 이룰 수 없는 소망들이...
사실 내 마음속에 얼음처럼 얼어있었다는 것을..이봄에 알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햇살같은 봄이 제 마음에도 찾아오리라 그렇게 믿게되는 봄날의 끝날..
나를 옭죄었던 사슬에서 이제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