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풍경사진 156

[고장난 시계와 조금씩 빨라지는 시계]

#1
고장난 시계와 하루 한 시간씩 빨라지는 시계가 있는데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시계를 고르겠는가?

#2
가을학기부터 새로 출강을 나가는 학교 문구점에서 작은 시계를 하나 샀다. 중국산이고 크기는 손가락 두 개 붙여 놓은 크기인데, 시간 표시부분이 크고 단순해서 보기 좋다. 수업시간에 탁자에 올려놓고 시간 조절하면 제격이다 싶어서 샀다. 알람 기능도 있으니 아침에도 요긴할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사용해보니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면 10분 빨라진다.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시간을 맞춘다. 10분을 다시 되돌려 놓으면서, 일주일에 정확하게 10분씩 빨라지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 중국산 안 좋다고 누가 그랬던가. 중국산치고는 아주 정확하다. 일주일이면 딱 10분이 빨라진다.

#3
'고장난 시계'와 '맞지 않는 시계' 얘기는 오래 전에 들었던 개그의 한 토막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고장난 시계'다. '맞지 않는 시계'는 하루 종일 시간이 맞지 않지만, 고장난 시계는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기 때문이란다.

개그니까 저런 대답이 나온다. 현실에서는 어쨌든 움직이는 시계가 더 쓸모가 있다. 시간이 안 맞으면 내가 일요일마다 시간 맞추는 것처럼 맞춰서 쓰면 되고, 시간 차이 나는 것을 염두 해두고 사용하면 된다. 사실, 요즘엔 저렇게 잘 안 맞는 시계는 별로 없다. 핸드폰이나 TV, 컴퓨터에서 알려주는 시간은 거의 국가표준급이다.

#4
재미난 점은 기계식 시계는 느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식 시계는 빨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치도 없고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내가 주변에서 보고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한번 확인해보기 바란다. 전자식 시계는 조금씩 빨라지지, 느려지지는 않는다. 자동차 안에 있는 시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빨라진다. 시계 100개를 골라서 관찰해보면 90개 이상은 빨라질 것이다. 디지털 시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빨라진 시계를 보고 움직이니까 단 몇 분이라도 일찍 출발하게 된다.

#5
가을학기 시작한지가 한달 보름이 지났으니 내가 일요일마다 시계 맞추는 일을 여섯 번 정도 했다. 처음엔 '중국산 탓'을 했는데, 이것도 계속 반복하다보니 잔재미가 있다. 시계랑 대화하는 것 같고, 뭔가 교감이 이뤄지는 것 같다. 한번 설정해놓고 죽을 때까지 변경하지 않는 일들... 이러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우리 주위에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 봐야하는 일이 있다면, 또 그런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참 행복할 것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건 아주 인간적인 행복이다.

사람 사는 일을 보면, 계획이 어긋나서 대폭 수정을 해야 할 일도 있고, 수시로 점검해서 그때그때 수정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조급해하지도 말고,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불편해 하지도 말자. 중요한 것은 게을러지지 않고 수시로 돌아보는 마음자세다.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보면 의외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 [500자 풍경사진 156]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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