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벽속의 요정'보고왔습니다.

김성녀 그녀의 도전은 어디까지 일까..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는 그녀의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한 그녀의 공연은 2009년 가을밤..내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그녀는 맡은 역할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을뿐만 아니라 영혼마저도 바뀌는 모양이다.
해마다 열리는 마당놀이에서도 그러했고 피카소의 연인들에서도 그러했고..
5년째 열연중인 '벽속의 요정'에서도 그녀는 김성녀가 이미 아니었다.
단지 나보다 조금 더 예쁘고 연기를 잘하고 노래를 잘한다는 차이만 있을뿐(너무 많은가?)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이건 정말 불공평한 편애다.
도대체 신은 왜 그녀에게만 이런 재능을 주신것일까?
피카소의 연인들에서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소화할수 있었는지
놀라웠지만 '벽속의 요정'은 많은 대사량보다 그 많은 역할을 홀로 완벽하게 해내는
재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5살 여자아이였다가 베를 짜는 소녀였다가 어미였다가 아비였다가 능청스런 놈팽이 연기까지
그녀에게 맞지 않는 역할이 있을까?

멋들어진 창을 구성지게 부를때는 영락없는 뺑덕어멈이더니...이제 기운도 그만할 나이가
분명함에도 핑크빛 소녀역할도 도무지 그녀의 능력에 못미치는것이 없다.

'벽속의 요정'은 40년을 벽속에 갇혀 살아야 했던 그녀의 아버지이다.
일제시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재원임에도 전쟁과 역사의 회오리속에서 사상범으로
몰린 비운의 아버지는 집안 벽속에 숨어 지내야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 순덕을 지켜주는 요정..벽속의 요정이 된것이다.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모시를 짜며 그녀를
지켜본다. 40년동안...벽속에 갇힌채..

실제로 있을 수도 있는...아니 어쩌면 있었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어느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이렇듯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때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길이 사실은 자신의 삶을...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평생의 고통에서 벗어날수 없는 길이 되었지만 벽속에 갇힌것은 아버지뿐만 아닐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을..곁에 있음을 감사하고 숨죽여 살았던 가족들에게도
이세상은 온통 벽이었을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벽속에서 나와도 좋을만한 세상이 왔다.
잠시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먼길로 떠나가 버린 아버지를
그리며 그녀는 노래한다.
그래도 살아있음을 감사하라고...삶은 아름다웠노라고..
2시간 동안 우리는 40년의 세월을 그녀와 함께했다.
그래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한곡은 수많은 시간을 넘어서는 시공을 초월한 여행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가슴절절히....한맺힌 노래도...귀엽고 앙증맞은 노래도 그녀는
눈부시게 나를 압도했다. 가장 앞쪽자리에 앉아 그녀의 숨결을 느끼고 눈빛을 보는것만
으로도 충분했지만 나도 맨발로 무대위를 팔짝거리며 그녀와 함께 뛰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벽속에 갇힌 요정을 환한 세상속으로 불러내보고 싶었다.

극이 끝나고도 한참동안 자리에서 일어날수가 없었다..그 여운을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싶어서...그리고 5년 10년후에도 난 무대위에서 팔짝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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