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왔습니다..
어느집이나 외할머니의 포근한 기억은 다 같을 겁니다.
저 역시도 외할머니의 넉넉하고 따뜻한 보살핌에 컸답니다.
친정엄마가 몸이 약했던 터라 나와 내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외할머니께서는 늘 우리집에 출근을 하시다시피 오시곤 했었죠.
결혼을 하고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살다보니..
그리고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를 대다보니..
내 아이의 건강때문에 이리저리 뛰고 신경쓰는 날이 많다보니..
외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더군요.
그래도 할머니는 늘 건강하신 분이었답니다.
어쩌다 친정을 가는날이면 외할머니는 저를 볼겸..우리 아이들을 볼겸..그리고 손주사위를 볼겸 겸사겸사 친정집에 오시곤 했습니다.
아들 자손이 없고 딸 셋을 두셨던 외할머니는 늘 그것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분이었답니다.
저를 보면
"잘해라..잘해라..시모에게 잘하고 조상 잘 받들면 니가..그리고 니 자손들이 평안할거다.."
"늘..기도해라..사람은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단다 그리고 이 할미가 늘...너들 편안하게 잘 살라고 기도한단다.."
그러던 할머니가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연락을 받고 토요일 부리나케 갔더랍니다.
벌써 중풍이 와서 몸의 절반은 굳어버린 상태이였구요. 안구 신경에 이상이 와서 눈을 못 뜨고 손으로 눈꺼풀을 열어야 볼 수 있었답니다.
그래도 오락가락 하는 상태에서도 저를 알아보시더군요.
그래도 입원당시보다는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월요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올해 93세로 별세를 하신터라 장수는 하셨기에 많은 슬픔은 덜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외할머니가 가시고
남겨진 외할아버지의 안부로 모두 걱정들이었죠.
외할머니는 손자, 손녀에게 늘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장난치다가 완고한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을라치면 손을 꼭 쥐고 부엌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너만 먹어라..하시며 군것질을 손에 쥐어주곤 하셨답니다.
나만 받았겠다..라는 우쭐함이 있었죠.
하지만 7명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 모두에게 그렇게 해주셨답니다.
할머니는 화장을 해서 동해바다에 실려가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갑갑한 곳에 있기 싫다고..할머니 고향이 보이는 동해바다에 뿌려달라고 하셨답니다.
생전 처음 화장을 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3일 내내 울지 않았던 제가 그만 엉엉 통곡을 하였답니다.
못한 자손이 그렇게 운다더니..제가 그렇습니다.
산다는 이유로 그저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한 죄송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도 아이들 낳아서 키워보니 아들없이 그 세월을 살아온 우리 할머니의 인생이 기구해서 울었습니다.
자손은 남아있지만 그 아련함을 모두 알기에 다들 울었습니다.
몸서리치게 통곡을 하는 저를 남편이 이끌고 이리저리 걷게 하였답니다.
가시는 것이 잘된거라고 말할것은 아니지만 오래 사셨고, 자손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때문에 할머니도 좋은 곳에 가실거라고..남편이 이런저런 이야기로 저의 통곡을 멈추게 하였답니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날 좋은 곳에...나이들어 할머니가 그토록 기도했기에 천국에 가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참..굴곡이 많았던 우리 할머니..
좋은 곳에 가셔서 이젠 편안하게 계셨으면 합니다.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했구요..
건강하게 살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할머니...그곳에서도 오래오래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