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풍경사진 153
[‘우체국’과 ‘편지’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해.]
모처럼 하늘이 맑고 시야가 확 트인 날씨다. 햇살도 적당히 따사롭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게 분다. 하늘엔 심심하지 않도록 구름도 군데군데 폼 잡고 붙어있다. 하늘이 높아지면 마음의 그리움도 한 뼘 더 깊어지는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예전엔 우체국에 정말 자주 갔고 편지 보내는 일도 많았다. 물론 그 편지는 대부분 길가에 서 있는 우체통에 넣어서 보냈지만, 우체국에 가서 직접 부친 편지랑 엽서도 많았다. 최근에 편지를 보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무척 오래되었다. 나의 게으름과 메마른 감정 탓이겠지만, 이메일과 전화의 발달을 운운하며 살짝 비켜 서 본다.
그 당시는 몰랐는데, 편지 한 통 보내고 받을 때마다 마음이 넉넉해졌던 것 같다. 마음 부자가 이런 것이지 싶다. 전화나 이메일보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편지 왕래가 많던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인간미 있고, 사람 사는 재미가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서로를 그리는 마음은 무르익고 하루가 다르게 부푼다. 마음은 천천히 전해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건지. 전화나 이메일은 그런 맛이 없다. 빠른 것만큼 놓치는 것도 많다.
편지를 보관하는 종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인 편지를 꺼내 보며 옛일을 떠올리고, 옛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으며 ‘너에게 편지를 쓰는 풍경’을 생각하고, 이수익 시인의 [우울한 샹송]을 읽으며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품는다. 우체국은 편지와 더불어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요즘에도 우체국에 자주 가기는 한다. 편지 보내러 가는 게 아니고, 공과금 내고 통장에서 돈 찾으러 간다. 예전에 우체국에 다니면서 마음 부자가 되어 행복했다면, 요즘엔 우체국 다닐 때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쪼들리는 내 생활을 보는 것 같아서 나 보기가 안쓰럽다. 아. 생각난 김에 이번 가을부터 다시 우체국이랑 우편물과 친해지는 생활을 해야겠다. 우체국에 공과금만 내러 가지 말고, 엽서도 짤막하게 써서 보내고, 편지도 보내는 거다. 경조사가 있는 집에는 우체국 전보도 보내자.
사람살이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편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래된 수단이면서 아주 강한 도구이고,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될 방법이다. 편지로 맺어진 관계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두터워진다. 또 우체국은 마음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성급히 내딛는 마음을 잡아서 발걸음을 조절해주고, 주춤하는 마음에겐 용기를 심어주는 곳이다.
내일은 엽서도 한 묶음 사고, 우표랑 편지지, 편지봉투를 사야겠다. 가을밤, 스탠드를 켜둔 조용한 방에서 편지를 쓰자.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체국에 가자.
- [500자 풍경사진 153]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