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사마천과 박경리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나남, 2008 재판.

2008년 5월 5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때 인터넷과 방송매체에서는 연일 생전의 선생의 마지막 인터뷰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즈음 봉사활동을 하셨던 어머니 한 분이 제게 물었었지요.



"선생님, 박경리 선생은 왜 사마천을 닮고 싶다고 했을까요?"



그때 저는 제대로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사마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제게 없을 때 였거든요. 그후에 '사기'를 읽으면서 사마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오늘에야 휴가를 받아서 책만들고 있으니 박경리 선생이 왜 '사마천'을 닮고 싶어 했는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우리들의 시간>이란 시집에 실린 선생의 시, 사마천입니다.





사 마 천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 당하고

인생을 거세 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사마천은 역모에 연루된 친구를 구명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그만 궁형에 처해집니다. 사형을 당할 것인가, 궁형을 받을 것인가의 선택 앞에서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궁형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해 나가던 사기를 끝내 완성시켜서 역사의 후인들에게 시대의 진실을 묻습니다.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완성해 나간 시간은 25년이란 긴 세월을 쏟아붓는 고통과 갈등의 끝없는 천형과도 같았습니다. 아마도 선생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궁형에 처해진 사마천을 떠올리며(아마도 의지의 표상으로 삼지 않았을까요?) 작가로서의 삶을 이겨나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어머니의 질문을 받은 이후에 늘 '사마천'을 떠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사마천'이란 불교적 용어가 아닐까 대답하기도 했었던 참으로 현명한 질문에 무식한 답으로 전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다시 넌지시 핵심을 건네는 어머니의 현명한 질문을 생각해보면서 저의 무지함이 더는 날뛰지 않도록 겸손해 져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잘 지내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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