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 사서일기) 막간에 읽는 책

(학교도서관 사서일기) 막간에 읽는 책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기간.
사실 학생들이 몰려오지 않는 때는 제 한가한 시간을 비집고 찾아드는 교사 혹은 명예사서어머니, 또 간혹 지인들이 있답니다.
그런 중에도 사서는 이런 막간을 이용해서 하던 일들 잠시 손 놓고 책을 읽습니다.
그간 죽 읽고 있던 책을 마무리 하거나 새로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만들거나, 혹 눈에 띄는 책을 잡고 후딱 읽어 버리거나 하지요.

전 요즘 찰스 다윈과 관련된 생물과학의 책들을 읽고 있답니다. 어제 일요일에도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을 소설보다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올해가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라서 마침 [책읽는사회국민운동본부]&[휴머니스트]에서 주최한 ‘다윈특강’을 매주 1회 듣고 있기도 해서요.

사실, 젊었던 시절에는 과학책에는 흥미가 없었는데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념과 철학에 관련된 책들에 매료되어 있었는데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과학이 이렇게 흥미롭게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주다니요.

며칠 전, 다윈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았더니 180여종이 됩니다. 그중 읽기 쉬운 동화나 <종의 기원>을 쉽게 해석한 만화부터 죽 읽고 있는데요. 지난 주말경부터 학생들 시험기간이라서 더 많은 책들을 욕심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서가에서 잡은 <미의 역사>는 움베르토 에코 교수가 쓴 책입니다. (아니, 움베르토 에코 교수가 이런 책도 썼나?) 의아해 하면서 책을 펼치니, 책 내용에 삽입된 그림들이 많아서 보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내용 중에서 아래와 같은 개념을 정확히 메모할 수 있어서 더욱 흐믓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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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용어 정의
-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 열린책들, 2005. 에서 발췌 -

멜랑콜리
그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멜랑콜리와 기하학이 결합하는 뒤러의 「멜랑콜라아Ⅰ」이다. 그 시대가 이러한 그림과 유클리드 기하학이 조화롭고 평온하게 적용된 「아테네 학당」같은 그림을 분리시키는 듯이 보인다. 르네상스의 인간이 실용적 기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우주를 탐구했다면, 여기서 예고되는 바로크적 인간은 도서관과 책을 뒤졌고 우울하게 그 도구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혹은 게으르게 손에 쥐고 있었다).
우울이 학문하는 사람의 운명이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서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이런 주제는 그 방법은 다르지만 이미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아그리파 폰 네테스하임이 다루었다. 여기서 기하학은 영혼을 얻고, 멜랑콜리는 완전히 지적인 차원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이중적 속성이 바로 앞선 르네상스적 정신이 지니고 있던 불안이라는 성질을 회오리바람처럼 끌어들이며 바로크적 인간 유형의 출발점이 되는 멜랑콜리한 미를 창조한다.
마니에리스모에서 바로크로의 이행은 학파의 변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삶의 극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미의 새로운 표현 형식들, 즉 경악스러운 것, 놀아운 것, 표면적으로 볼 때 비례적이지 않은 것 등을 추구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보로미니는 사피엔차 대학의 안뜰에 숨겨 놓은 산티보 성당의 기상천외한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대비를 이루는 오목과 볼록 구조로 성당 내부의 천장을 덮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나선형 채광창으로 그 전체를 에워싸서 그 같은 결과를 얻어 냈다. 그리고 얼마 뒤 과리니는 중첩되는 육각형을 통해 12꼭지의 별 모양으로 펼쳐진 둥근 천장을 가진 토리노의 사크라 신도네 예배당을 설계했다.


예리함, 기지, 기상주의
바로크적 정신의 특징 중 하나는 정확한 상상력과 놀라운 효과의 조합인데, 이것은 다양한 이름들-예리함, 기상주의(奇想主義), <기지>, 마리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한 사람은 그라시안이다.
트렌토 공의회 다음 날 예수회 회원들이 공들여 환성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이런 새로운 형태의 수사법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1586년의 <교육령>(0599년에 갱신)은 5년간의 대학 예비 과정 수업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2년간 수사학을 공부하도록 규정했다. 학생에게 완벽한 웅변술을 보장해 주는 수사학은 유용성만이 아니라 표현의 아름다움을 목표로 한 것이다.
기발한 표현은 비록 고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침투할 수 있게 날카롭고 통찰력이 넘쳐야만 한다. 예리함은 상식적인 시각에서는 볼 수 없는 관계를 기지를 통해 볼 수 있는 영리하고 창조적인 정신을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개념적인 미에 완전히 새로운 지각의 공간들이 열리는 한편 감각적인 미는 점점 더 무의미하고 모호한 형식에 근접하게 된다. 시에서 예리함은(스페인에서는 시인 루이스 데 공고라에 의한<공고리즘>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시인 조반니 마리노에 의한 <마리니즘>으로 탁월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시에서는 놀랍고 인상적인 문체와 기발하고 간결한 기지가 내용을 크게 압도한다.

예리함 -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詩
예리함의 본질은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정의되는 게 아니라 감지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포착하기 힘든 주제에 대한 묘사는
그 어떤 것이든 유용할 수 있다.
귀로 듣기에 아름다운 것과 눈으로 보기에
조화로운 것은 지성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지 - 에마누엘레 테사우르의 詩
타고난 기지란 통찰력과 주의력이라는
두 개의 자연적인 재능이 포함된 지성의 놀라운
힘이다. 통찰력은 실체, 질료, 형식, 우유성,
속성, 원인, 결과, 목적, 공통감, 유사성, 대조, 동등,
우월, 열등, 기호, 고유 이름과 양의성 같이,
주체의 모든 세부적이고 다양한 상황들과 서로
거리가 먼 상황들을 꿰뚫어 본다.
이러한 것들은 모든 주체 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
그곳이 마치 자기들의 자리라도 되는 듯이

통찰력 - 에마누엘레 테사우로의 詩
예리한 지성의 신성한 결과물은 그 성질보다는
외형에 의해 더욱 인정을 받았는데,
그것은 어느 세기에나 모든 인간들의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기적으로 읽히고 들리며,
박수갈채로 최고의 환대를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리함으로 모든 독창적인 사고의
대모이다. 그것은 설교와 시적인 연설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고 죽어 있는 페이지를 생명력
넘치게 만드는 재치이자, 교양 있는 대화를
아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양념이다.
또한 지성의 마지막 노력이며 인간 정신에
남아 있는 신성의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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