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할머니

아이들은 그 할머니를 감자 할머니라고 부른다.
부산한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버스 정류장까지
농로를 내달릴 때 유독 그 할머니와 자주 부딪힌다.
할머니는 멀리서도 단번에 우리 차를 알아보시고 두 손을 요란하게 휘저으며 차를 세운다.
버스 시간에 임박해서 집을 나서서 행여 버스를 놓칠새라 마음이 조급한데,
내 마음따윈 아랑곳없이 차를 가로막고는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물으신다.
"아~~들 학교 가요?"
"네."
"도시서 살다가 이런데 와서 힘들겠네."
"네."
"언능 가요. 늦겄다."
"네."
늘 이런식이다.
가뜩이나 교행이 안 되는 좁은 농로에서 마주오는 차와 부딪혀 서로 양보하고 양보받느라
시간을 지체한 날에 할머니까지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울고싶은 심정이다.
버스를 놓치면 영락없이 아이들을 학교가지 데려다줘야하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 한번도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두세번은 놓치고도 남았는데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아이들을 기다려 주었기 때문이다.
시골이기에 받을 수 있는 친절이지만,
아이들은 버스에 오를 때 자신들에게 일제히 시선이 몰린다며 창피하다고 투덜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할머니는 예의없이 두 손을 흔들며 차 앞을 가로 막았다.
마치 먼 길 달려온 딸을 반기는 어머니 마냥 양손을 사정없이 흔들며 제동을 걸었다.
" 아~~들 데려다주고 오는길에 우리 집에 들러 감자좀 가져가요."
"감자요? 아.. 네. 감사합니다."
"핵교 댕기느라 힘들겠네."
"다닐만해요."
"언능 가요. 늦겄다."
"네."
대답을 마치자마자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돌아오는 길은 비교적 여유롭다.
차 문을 열어 환기도 시키고,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그래도 찬찬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돌아온다.
그러다 불현듯 할머니 집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아... 맞다. 할머집이 어디더라?. 어쩌지. 할수없지 뭐. 내일 만나면 물어봐야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집으로 왔다.


그 후로 할머니 집을 알게 되었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상상도 못했으니까.
당연히 페가로 여겼던 길 옆의 그 집이 할머니 집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시꺼멓고 낡은 판자집은 차치하고라도,
집 앞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는 하수구의 썩은 냄새보다 비위를 더 상하게 했고,
툇마루 옆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연탄재는 몇 년치를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둔 듯했고,
누군가가 쓰다버린 땟국물에 찌든 메트리스가 담한쪽에 세워져 있는 집.
몇 년동안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불결해보이는 집.
그 누추한 집이 바로 할머니의 집이었다.

할머니는 그 집에서 혼자 산다.
당신 소유의 땅이 한 평도 없어 도시 사람이 사서 버려둔 땅에다 감자와 깨, 콩 등을 심어
당신도 먹고 도시로 나간 자녀들에게도 보낸다고 하셨다.
남의집 밭일로 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할머니는
우리가 이사온 날 저녁에 가루비누를 사가지고 불쑥 찾아오신 분이다.
일부러 버스 시간 맞춰 예미까지 나가서 가루비누를 사고,
한시간 남짓 다시 버스를 기다려 집까지 오신 수고를 그때는 몰랐다.
"동암에 내 동생이 사는데 인천서 왔다니 반갑네." 하며
심하게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며 웃으시던 할머니와의 첫만남.
이후 세차례에 걸쳐서 감자를 주셨고,
당신 텃밭에 있는 깨모종을 뽑아 주시며 심는 법을 알려 주셨던 할머니를 어제 아침에 또 만났다.
입가에 김치국물을 잔뜩 묻히고 남의 집 밭일을 나가던 할머니는
"호박하고 감자 줄테니 암때나 와요."
"매번 그렇게 주셔서 어떻해요. 저 다 주고 할머니는 뭐 드실라고요?"
"나 먹을 것 많아. 걱정말고 내려와요."


어제 오후엔 예미에 나가 말랑말랑한 연시를 한봉지 사와서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할머니는 대단한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할머니의 소박한 웃음이 내 마음에도 번져 나도 덩달이 기분이 좋았다.
가진 것이라곤 감자밖에 없어도 나눌 줄 아는 할머니의 넉넉한 마음이 좋다.
아랫사람이지만 먼저 다가가 베푸는 할머니의 푸근한 마음이 더 없이 좋다.
낯선 곳에서 젊은(? )아낙 적적할까봐 언제든 놀러오라고
만날 때마다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은,
인색하고 이해타산적인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요즘도 할머니는 멀리서 두 손을 요란하게 휘저으며 차를 세운다.
그러면 나도 와이퍼를 작동시켜 할머니의 손인사에 화답한다.
할머니는 내가 앞 유리를 닦는 줄로만 알겠지만,
그것은 할머니의 반김에 답례하는 내 인사법이다.

며칠 전,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구부리고 앉아 힘겹게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두면
자식들이 차례로 와서 돈을 가져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무척 아팠었다.
그나마 있던 땅도 자식들이 차례로 팔아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모가 고생하며 번 돈을 뜯어가다니.
집수리는 못해줄망정 어떻게 품팔이로 모은 돈을 가져간단 말인가.
그 얘긴 차라리 안 듣느니만 못했다.
오늘 아침 할머니 집을 지나며 보니 새연탄이 한장도 없던데
혹시 연탄 살 돈도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할머니의 푸근한 마음처럼 푸근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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