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 이덕무의 문장 2
1793년 1월 24일의 일기중에서...
몸이 아픈 데다가 마음도 편치 않으니, 더욱더 탑이 보고싶다. 따뜻한 아랫목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내 발걸음은 백탑이 서 있는 옛절터로 먼저 향하였다. 대궐의 일을 감당하기가 날로 힘에 부치고, 몸이 부쩍 쇠약해지니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마음이 상하였다. 이럴 때일수록 커다란 탑에서 풍겨 오는 서늘한 돌 냄새, 짙은 이끼 냄새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어진다.
열에 들뜬 몸인지라 발걸음은 허공을 딛는 듯 휘청거렸으나, 마음만은 바빴다.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부축이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에 감겨들며, 탑에게로 나를 이끌었다.
...
변함없이 그곳에 서 있는 탑을 바라보니,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 온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탑은 처음 내 마음속에 담아 놓은 모습 그대로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탑도 반가움에 일렁이며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탑 아래 누군가 먼저 와 있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고을 현감이 되어 부여로, 가평으로, 비인으로 내려가 있는 벗들의 얼굴이었다. 지리산 자락 안의 고을에 있는 연암 선생도 보였다. 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벗들은 이십여 년 전, 우리가 백탑 아래에서 자주 어울리던 그날처럼 얼굴이 더욱 앳되어 보였다. 언제부터 다들 모여 있었던 것일까? 탑 아래 비스듬히 세워 놓은 저 거문고, 아니 담헌 선생도 오셨단 말인가?
단숨에 그 앞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느다란 빗줄기였는데도 어느새 몸은 흠뻑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누군가 몸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왜 걸음이 나아가지 않는 것일까? 나의 백탑, 나의 벗들이 저렇게 서 있는데.(--->이 부분은 혼몽중의 환영과 같은 것으로 이때 이덕무는 실신하여 사람들에게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글을 쓴 다음날 아침 세상을 떴다.)
손자는 아들과는 또 달랐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나도 아직 젊은 아비라 그랬는지, 나만의 고민이 많았다. 나의 눈길은 자주 내 속으로 향해 있거나, 집 울타리를 넘어 세상으로 향했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손자를 대하는 느낌은 좀 달랐다. 이 세상에서 이 아이의 시간과 내 시간이 서로 교차해 만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나,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핏줄의 끌림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손자를 볼 때마다 나의 눈길은 자연스레 그 아이 뒤를 좇아갔다. 내가 알지 못할 시간 속에서 살아갈 그 아이의 삶을 미리부터 충분히 축복해 주고도 싶었다. 손자와 같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갈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몽롱한 가운데 백탑과 벗들의 모습이 보이고, 간혹 정신을 차리면 근심스런 아들의 얼굴과 손자의 얼굴이 보인다. 열이 오르내리면서 그렇게 꿈과 생시를 몇 차례나 오갔는지 모른다. 아, 정말이지 이제 나도 늙었는가, 감기가 쉬이 낫지를 않는다.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안소영, 보림출판사, 2006.